수필

소꿉놀이

명명가 2017. 12. 7. 18:58

인생은 단 한 번의 소꿉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소꿉놀이라면 좋겠다. 소꿉놀이는 흙으로 만든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먹는 시늉만 해도 배가 부르고, 돈과 명예와 권세는 몰라도 좋고, 사는 일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 필요도 없고, 삶의 숙제나 상처도 없고, 다음 날에도 또 다른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 사랑이 뭔지 모르면서 아기 부부 연을 맺던 천진한 유년의 날들이다. 옛날의 소꿉놀이 장소는 언제나 남의 집 담벼락 밑 양지바른 곳이나 늙은 느티나무 그늘 밑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행복을 만들었고 요즈음의 아기들은 놀이터 공간이나 아파트 거실에서 신식 장난감으로 소꿉놀이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꿉놀이는 인생을 닮았다. 소꿉놀이는 주동하는 아이의 기분에 따라 어떤 아이는 아빠로, 어떤 아이는 엄마로, 언니로, 의사로 다양한 종류의 배역이 정해진다, 놀이가 진행되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토라지는 아이도 있다, 그러다가도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리면 어디선가 어머니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배역에 사용하던 물건을 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들어섰다. 소꿉놀이는 대리만족의 장이었다, 인생의 배역은 노력여하에 따라 결정되지만 소꿉놀이는 손쉽게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자기 배역이 좋아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배역이 좋지 않아 슬플 때도 있지만 우리네 인생은 배역이 한정적이고 유한적이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던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황혼이 깃들게 되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도 모두 다 버려두고 가야 한다, 소꿉놀이의 가치를 이제야 알았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이 세상에 있을 때만 소꿉놀이의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인생을 한 바퀴 돌아와 세상물정을 알 것 같지만 아직도 나는 소꿉놀이가 더 그립다.

칠순을 넘어 뒤돌아보니 지난날의 세상사가 무너져 내린 소꿉놀이터였다. 이제는 색다른 소꿉놀이를 시작한다. 밭에 각종 채소를 길러 김장을 담그고, 고구마 길러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토마토가 열리고 호박 줄기 커가는 모습을 보며 환희를 느끼고, 한 줄의 글을 써서 책을 편집하고, 손자를 돌보며 보람을 느끼고, 지인들과 전국 명산을 찾는 것이 사명이라 여긴다.

소꿉놀이에 끼지 못하여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아이가 있는데 어른들의 소꿉놀이도 배역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배역이 마음이 들지 않아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행복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 하면 항상 배역은 없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만 배역이 생긴다. 배역이 있어야 소꿉놀이를 할 수 있고 지금의 소꿉놀이가 끝나면 영영 다른 소꿉놀이는 없다. 인생의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무대에서 자신의 배역을 만들어간다. 한 배역에서 다른 배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스스로를 갈고 닦고 만들어나간다. 인생은 각자 선택한 배역에 따라 한평생을 보낸다. 가정놀이에서는 부모와 자녀로, 학교놀이에서는 스승과 제자로, 병원놀이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또는 환자로 배역을 맡는다. 인생은 제일 먼저 부모를 모방하고 동년에서는 친구를 아니면 어떤 캐릭터를 모방하며 성장한다.

노년의 소꿉놀이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배역이다. 어릴 적 소꿉놀이에서 맡았던 배역은 내 인생에서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노년의 공간에서 새로운 배역을 찾고 주어진 배역에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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