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실(壽室)을 만들고
자기 무덤에 어떤 꽃이 필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솔로몬의 전도서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다는 말이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자신이 죽었을 때 사후처리 절차와 계획을 스스로 적은 ‘임종 노트’가 필수품이라고 한다. 임종 노트에는 장례절차, 유품처리 방법, 매장 장소, 관련 업체의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세월의 비를 고스란히 맞고 생존의 언덕을 비비며 살았는데 내가 죽은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고 살았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난 후에 죽음이 보인다. 사람들은 남의 무덤 위의 떼가 잘 사는지를 말하지만 정작 자기 무덤 위에 어떤 꽃이 필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놓는 자기가 묻힐 무덤을 수실(壽室)이라 한다. 나는 오늘 고향 마을 중산골에 내 수실을 만들었다. 내 아버지께서 수실을 마련하시고 우리에게 보여 주시던 일을 내가 가족들에게 반복하고 있다. 그 수실은 혼자 걷는 하늘나라 길이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신 분들 옆에 살아 있는 자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선조 할아버지들과 집안 형제들이 함께 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마음 쓰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내 수실을 완성하고 나니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내 수실자리의 흙은 석비레가 섞인 좋은 땅이다.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한마디씩 한다. 죽은 후까지도 육신이 안주할 자리를 찾는 것을 보면 욕심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둘레석에 나와 아내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상석이 두려움을 준다. 잔디를 입힌 봉분은 내 인생을 말한다. 덧없고 허망하다. 묏자리의 중심을 잡고, 무덤 모양을 만들고, 둘레석을 세우고, 떼를 입히고, 계단을 만들고, 조경수를 심은 경관을 보니 그림이 좋다.
종친회 임원들의 세심한 노력이 멋진 묘역을 낳았다. 내가 죽으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처음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불안하더니만 지금은 어떤 물건을 산 다음에 오는 흐뭇함이 있다. 한걸음 더 나가 별장 한 채를 분양받은 느낌도 있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무덤이 함께 있는 공간을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는다. 죽은 자들의 묘비에는 하나 같이 태어난 날짜와 죽은 날짜가 있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우리를 가르친다. 내 생명이 어느 순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부부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날도 유한하고, 이 무덤에서 육신이 함께 할 날도 유한하다. 육신은 유한하지만 혼은 영원하다. 이 무덤은 푸름 속에 덮여 산새소리 가득할 것이다. 삶 속의 죽음이 이곳에 있을 것이고, 죽음 속의 삶이 여기에 있다. 내 무덤은 내가 파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 무덤에 무엇을 가지고 갈까?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굳이 한 가지만 가져가라면 나의 삶이 담긴 내가 쓴 책을 택하고 싶다. 세상 길 걷다가 지쳐 쓰러져 내 무덤으로 가면 그곳이 내 육신의 잠자리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무덤에서 못 다준 사연을 전할 것이다. 푸른 숲과 고요한 아침이 깨어날 때에 산새들과 어울려 부드러운 햇빛이 무덤을 감싸고, 주변에 있는 노송 위에 잡새가 둥지를 틀면 새끼들이 그날을 즐길 것이다.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문이다.
(2011.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