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안식처
웹은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라고 했다.
과연 가정이 인생의 안식처일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위로받거나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그때 포근한 안식처가 있으면 지친 심신을 쉽게 회복할 수 있고 다시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
삶의 안식처는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곳이다.
사람에게는 삶의 안식처로 네 개의 집이 있다.
첫 번째 집은 몸이라는 마음이 사는 집이다. 인간의 육체는 마음이 사는 깨끗한 성전이다. 그래서 사람이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여기에 있다. 마음은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상상력의 복합체로 의식의 단면을 가리킨다.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를 영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몸이 마음의 안식처이다.
두 번째 집은 가정이라는 집이다. 가정은 항상 편히 쉴 수 있는 생명의 안식처이다.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로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며 보금자리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적 창조 섭리에 뿌리를 둔 운명적 관계가 가정이다.
가정은 어떤 허물과 잘못도 감싸고 위로와 이해로써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는 안식처이다. 가정에 평안이 없고 가정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세상에서 방황하게 된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삶의 안식처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하더라도 가정이 잘못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돈으로 주택을 살 수가 있으나 가정은 살 수가 없다.
세 번째 집은 ‘나라’라는 집이다.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이다. 권세 재물로 사람을 부릴 수 있으나 행복과 사랑은 얻을 수는 없다. 가족 구성원들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서고, 나라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네 번째 집은 ‘우주’라는 집이다. 자연과 지구는 사람이 사는 큰집이다. 우주는 생명이라는 대 가족이 사는 큰집이다. 우주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가 삶의 안식처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바다는 우주라는 큰 집속의 일부분이고 넓고 푸른 가슴이 되어 잔잔한 숨결로 지친 몸과 맘을 다독여 주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와 같이 네 개의 집이 있다. 이 집에서 안식을 취하여 행복을 누린다. 이 4개의 집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누리는 집이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구하는 자에게 복을 누리는 삶(시122:9절)을 약속하시는데 교회와 가정과 국가와 자신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여정이 결코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하는 인생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은 이 순간도 정해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생은 배우일 뿐이다. 연기가 끝나면 사라져 버린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육체는 부모로부터 살과 피를 이어 받아 탄생한 육이 있고, 하나님의 생기를 이어 받아 탄생한 신의 존재인 영혼이 있다. 영과 육이 구별되어 있어서 ‘영의 아버지’와 ‘육의 아버지’가 따로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구원도 이 육체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다.
영혼의 집은 차원이 다르다. 영혼의 안식처는 보이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람은 크게 육체와 혼과 영으로 되어 있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 영양을 섭취하여 몸속에서 신진 대사를 일으켜야 육체를 존재하게 된다.
육체는 영혼이 떠나면 기능을 정지하고 이내 썩어 흙이 된다. 혼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육체와 함께 성숙해진다. 혼은 ‘지’, ‘정’, ‘의’로 이루어져 있다. ‘지’는 지식이고 ‘정’은 감정이며 ‘의’는 자신의 의지이다.
‘혼’은 인격이며 ‘영’에 붙어서 ‘영혼’으로 표현된다. 어떤 사람은 영혼의 세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의 세계이다.
‘영혼’의 세계는 영원불멸한 것이며, 파장의 세계이기에 뇌파를 통한 오링 테스트로 그 영혼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