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동서이신 원로 장로님의 팔순을 맞아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겠다. 장로님의 슬하에 삼남 일녀를 하나님께서 주시고 알뜰히 키우는 세상을 알게 하셨다.
큰 동서는 젊은 날에는 육군 장교로 월남 전쟁에 참전하는 등 화려한 시절을 보냈고 전역하여 사업을 하면서 주어진 신앙인의 길을 걸었다.
아주 가까운 친인척만 모였다. 우리 내외도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조카의 차로 바꿔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만나는 얼굴마다 지난날의 사연을 달고 나타났다.
큰 동서 내외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었는지 호텔 예약을 취소하라고 하시어 자식들은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별로 호텔이 반갑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연이야 어쨌든 정든 사람들끼리 만나 식사를 하니 즐거운 시간이 마련되었다.
팔순 모임이 시작되고 큰 며느리가 대표 기도를 하였다. 마음에 와 닿는 기도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인생의 여정이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찡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준비된 음식이 나오고 술잔도 오갔다. 조카들이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세월은 흘러 같이 늙어가지만 그 시간은 그들의 학생 시절로 돌아갔다. 말썽을 많이 부린 큰 조카는 자기의 치부가 오히려 인생을 살아오는데 약이 되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공부의 등수가 사회생활의 서열이 아니라고 실증하고 있었다. 사회는 또 다른 세분화된 서열이 무궁무진하게 많기 때문이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사정없이 돌아 원로 장로님이 되셨다. 팔순이 자랑스럽기만 하지 않은 것은 나이든 몇 사람만 알 수 있는 야릇한 기분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오늘도 그렇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잘 되고 바라는 것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뜻은 거역할 수가 없다.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말에서 80세(歲)를 일컬을 때 여든 살이라 하고, ‘팔순’이라고도 하고 '산수'라고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어른의 나이를 밝힐 때는 별칭을 쓴다. 논어 위정편에서 연유한 지학(志學)은 15세, 이립(而立)은 30세, 불혹(不惑)은 40세, 지천명(知天命)은 50세, 이순(耳順)은 60세 등이 있다. 나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별칭을 정했던 것 같다. 70세를 흔히 고희(古稀)라는 별칭으로 표현하는데, 이와는 달리 80세와 90세의 경우에는 팔순, 구순 외에 별칭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산수 역시 이러한 억지 표현의 하나로, 산(傘)을 파자(破字)하면 팔(八)+십(十)이 되므로 80세가 된다는 것이다. 산수는 팔순, 졸수(卒壽)는 구순, 미수(美壽)는 66세, 희수(喜壽)는 77세, 미수(米壽)는 88세, 백수(白壽)는 99세로 표현하기도 한다.
축의금 봉투에 쓰는 문구도 '축 팔순연' (祝 八旬宴=祝 八旬筵), 또는 '축 산수연' (祝 傘壽宴=祝 傘壽筵)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傘壽(산수)라고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고 祝(축) 八旬(팔순)이라 쓰는 것이 맞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간혹 고통과 슬픔이 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뒤돌아보면 그런 것조차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어느새 자식들은 큰 나무처럼 잘도 성장했다.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뜨거운 마음이 흐른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달라지고 글도 달라진다. 이제 나의 귀에도 새로운 기도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