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빛을 잃은 사람들

명명가 2013. 4. 30. 22:24

  빛을 잃고 연극배우, 라디오DJ로 ‘제2의 삶’을 사는 어느 개그맨의 이야기다. 공연이 끝나면 그는 객석을 향해 한쪽 귀를 내민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몇 명이나 왔을까?’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보다 잘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박수소리 평생 가슴에 담아 두겠습니다.’ 그는 중도 장애인이다. 중도 장애인이 되면 ‘패닉 - 거부 - 분노 - 수용’이라는 4단계를 누구나 겪는다고 한다. 그는 6살짜리 딸의 눈과 아내와 친구들의 얼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시절의 일상이 많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실명 이후 어쩌다 한번 꿈을 꾸면 꿈속에서라도 세상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꿈 횟수가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아예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에 시각적인 자극이 없으니 그 감각에 대한 기억 자체가 옅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눈으로 잘 볼 때는 못 보던 것을 눈이 멀고 난 후에 무엇이 행복인지 눈을 떴다고 한다. 가끔은 서글프고 힘들지만 새로운 꿈을 꾸는 인생을 이제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가 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모르고 살아온 삶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헬렌켈러의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다.

  ‘내가 죽기 전에 3일 동안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내가 눈을 뜨면 나를 이만큼 키워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애니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 선생님의 얼굴과 특징을 내 손가락, 그 촉감으로 알았었는데 그 선생님의 인자한 얼굴 모습, 그의 피부 색깔, 그가 입고 있는 옷, 그의 몸매, 이 모든 것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면서 내 가슴속에 깊이 기억해 두겠다. 그런 다음 내 친구들을 찾아가고 싶다. 내 친구들의 얼굴 모습과 특징 하나하나를 다 기억해두고 오후가 되면 들로 산책을 나갈 것이다. 들에 나가서 바람에 나부끼는 그 아름다운 나뭇잎들과 아름다운 꽃들과 이름 모를 풀들과 저녁이 되면 내가 내 손가락으로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었던 저녁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바쁘게 지낼 것이다.

  둘째 날 새벽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침에 먼동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름다운 이슬방울과 종다리들을 보며 집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메트로폴리턴에 있는 박물관으로 뛰어가겠다. 박물관에 가서 공룡들의 큰 뼈다귀들과 많은 유적들을 보고, 오후에는 미술관으로 뛰어가겠다. 미술관에 가서 화가들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가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과 내 손가락 촉감으로 만져도 알 수 없었던 색깔의 신비함을 보면서 지낼 것이다.

  셋째 날 아침에 큰길가로 나가 청소를 하는 청소부들의 모습과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보고 싶다. 아침을 먹고 오페라하우스로 뛰어 갈 것이다.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가수들의 우아한 동작을 볼 것이다. 점심을 먹고 영화관으로 가서 스크린에 비취지는 아름다운 장면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유명한 멋진 배우들을 볼 것이다. 저녁이 되면 도시 복판으로 걸어 나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거리와 쇼윈도에 걸쳐져 있는 아름다운 장식과 상품들을 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아야 할 그 순간에 나는 이 세상의 3일 동안만이라도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하여준 그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만 충고를 한다면 ‘내가 만약 내일 맹인이 된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보고 살까?’ 하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고, 내가 내일 귀머거리가 된다면 ‘오늘 내가 어떤 음악을 들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생을 산다면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잔에 차고 넘친다. 이들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다. 사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현재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웃을 수도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도 있다.

  ‘달팽이의 별’이라는 영화이야기다.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그들의 생활은 답답하리만큼 생소한 일들이었다. 제24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대상을 수상이기도 한 이 영화는 사회적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그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살아가며 손가락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시청각 중복장애와 저신장 장애라는 특징을 가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우주가 있다. ‘달팽이의 별’에는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가졌기 때문에 마치 달팽이처럼 오직 촉각에만 의지해 아주 느린 삶을 산다. 그러나 주인공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이야기한다. 영찬이 지상에서보다 물속에서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표현한다. 영혼은 자유로운데 현실은 답답함을 수영하는 장면으로 말하고 있다.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순호가 착하여 영찬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지독하게 외로웠던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살 수 있었다. 이 일들은 결국 인간의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 영찬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순호는 어렸을 때의 사고 때문에 생긴 척추장애로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영찬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이 연인의 사랑은 빛난다. 비온 후 아파트 베란다의 물방울에서도 생동감을 느끼고, 손끝으로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 부부의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날 때 터널에 대해 영찬과 순호가 이야기하는 장면에는 장애인들의 일상생활과 생각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빛을 잃은 전제덕의 이야기이다.

  그는 간난아이 시절에 열이 43도까지 오르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생후 보름 만에 시력을 잃었다. 다섯 살 때 친구들이 책을 보며 깔깔 웃는 것을 들으며 자신의 장애를 처음 깨달았다. 시각장애인에게 침술이나 안마는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고, 선배들이 끌어주니까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월수입도 300만원씩 벌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폐인이 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하모니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열심히 하여 하모니카가 한 달 만에 고장이 났다. CD 한 장을 1000번 이상 듣다보니 망가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연습한 것이다. 자기 인생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음악만이 그의 삶에서 절박하고도 합당한 이유였다. 그는 북과 장구, 하모니카를 차례로 섭렵하며 소리를 탐미하여 끝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요즈음에 불편한 것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하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써넣으면 하단에 있는 문자를 그대로 옮겨 쓰라는 게 있는데 그때 좌절한다고 한다. 이동할 때 콜택시를 부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전화 한 통이면 전부 배달해 주는, 눈을 한번만 뜨면 해결되는 일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게 힘들다고 한다. 우리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다. 한번쯤 눈을 감고 거리를 걸어보면 막막한 현실에 부딪친다. 우리가 장애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것은 아주 작은 배려이다. 그 배려는 빛의 세상에 감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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