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간이 멈춘 자리

명명가 2013. 3. 5. 21:35

  퇴직 후에 첫 발령지의 새내기 교사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첫 발령지에 가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 곳에는 고향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인상적인 학교 운동장, 면소재지의 아기자기한 모습, 사계절의 아름답던 모래 해변, 무엇보다 함께 근무하면서 많은 도전을 준 동료들. 그곳은 나에게 첫 발령지란 큰 의미와 인생의 출발선이 그어져 있다.

  그곳은 지금도 내가 떠났던 때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담임을 맡았을 때 젊었던 학부모들은 이젠 허리가 굽어 있고, 제자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이젠 50대 중반이 되어 객지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만 오가고, 나와 함께 근무하던 선배들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다. 지난날의 향수를 자아내는 건물과 외부 모양을 바꾼 집들이 그날을 지키고 있다. 5일장이 설 때는 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세월이 허전함을 말한다. 

  그 옛날 다방이 4개나 있었고, 연탄공장, 양조장, 약국, 음식점, 이발소, 미장원, 정육점, 극장, 미군부대와 종사자들의 숙소, 체육관, 면사무소, 지서, 연이어 서 있던 가게들, 양복점, 정류소의 많은 손님들과 아이스께끼 공장, 1000여명 이상 되던 초등학교, 500여명의 학생들로 넘치던 중학교, 줄지어 해수욕장으로 달리던 차들,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이제는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흔적만 남아 있고, 학교 운동장에서 응원소리만 메아리로 들린다. 밤이 되면 인적이 뜸하고 그날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가로등 밑에 남았다.

  양조장에서 자전거에 술통을 가득 실고 줄을 지어 달리던 젊은 청년들, 연탄공장 앞 연탄을 끌던 아저씨들, 약국 앞에 서서 비밀 이야기를 나누던 아줌마들,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옮겨 다니며 먹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던 직장인들, 미군부대에서 미군 물자를 사 나르던 종업원들, 캔 맥주를 안고 드나들던 미군들, 등하교 때마다 문구점 앞에 줄을 서던 학생들, 자전처포로 자전거를 끌고 오던 손님들, 바닷가 아줌마들이 생선을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소리 지르던 풍경, 시골에서 곡식을 보따리로 가지고 나와 중간 상인들과 실랑이를 부리던 정겨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자리에 그날의 그림자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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