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자린고비의 생활신조를 만든다. 그 삶은 어디서부터 눈총을 받을까?
1970년대 초에 검소하기로 소문난 자린고비를 알았다. 그의 직업은 이발사였다. 이발료를 받으면 아내는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하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생활력이 강하여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40여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바라던 부자가 되었다. 건물도 3채나 되고 시골 부자의 척도가 되는 논도 100마지나 되었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였다. 과정으로 보면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 부부는 아직도 시장 구석에 있는 아주 허름한 집에 산다. 좋은 집 3채는 월세나 전세를 받는다. 논 100여 마지기는 임대를 주거나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생긴 수입은 하나도 쓰지 않고 또 부동산을 구입할 자금으로 저축한다. 나이 든 두 늙은 내외의 생활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논이 100마지기가 넘는데도 농사를 짓거나 임대를 주어 얻은 쌀은 모두 수매하고 식량으로 먹을 쌀은 조금씩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 5일 장이 열리는 날에는 시장에서 밥을 사다가 며칠간 먹기도 한다. 집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시장 구석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한다. 나이가 들면서 남편의 귀에 문제가 생겼다. 미리 치료하였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돈 때문에 방치한 결과, 지금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하다.
현대판 자린고비의 삶은 어디까지 박수를 받아야 하고 어디서부터 눈총을 받아야 할까?
돈은 쓰기 위하여 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박수를 받는다.
자린고비들의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마음이 넉넉해질 때가 되었는데 끝도 없는 욕심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부모님들이 물려준 가난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내년에 흉년이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쌀 한 톨이라도 아껴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있었다. 이런 현실이 그들을 강박증 환자로 만들었다. 재물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 자신의 노후가 보장된다는 마음도 더해졌을 것이다. 넘쳐도 여유 없는 끝없는 가난의 심리가 비축의 생활을 만들었다.
자린고비 설화는 지독한 구두쇠 영감이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보기만 하면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다. 조선시대 충북 음성에 살았던 조륵은 천하에 소문 난 자린고비였다. 조륵은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 어느 날 길가에서 계란 하나를 주었다. 그 계란은 암평아리가 되었고 암평아리는 암탉이 되었다. 암탉이 알을 낳아 그의 재산은 불어났다. 무슨 일이든 하기만 하면 잘 되어 부자가 되었다. 그는 재산이 많아질수록 지독한 구두쇠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족제비가 닭 한 마리를 물고 갔다. 그는 하늘이 준 복이 다하고 장차 재물이 나가려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부터 그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홍수를 대비해 둑을 쌓았다. 그리고 논밭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영호남 지방에 흉년이 들었다. 그는 곳간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사람들을 구하자 소문은 영조임금에게까지 들어갔다. 영조임금은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비(碑)를 세워주었다.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유산 하나 못 받은 아들에게 ‘네 복은 네가 타서 살아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