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롭고 똑똑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더욱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다. 문화가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 바보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보는 행복하다. 바보가 행복한 이유는 그가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에 기뻐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와 권력과 명예에 있지 않고 단순하고 단일한 눈에 있다.
바보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든 내가 바보처럼 살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가수 김도향이 부른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면서 한숨 쉬듯 하는 말이다. 자신이 맡은 일의 분야에서 아쉬움이 남을 때 이런 느낌이 든다. 거울 속에서 눈에 띄게 늘어가는 흰머리 아래 어느덧 주름이 잡혀가는 얼굴을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는지 되물어보게 된다. 60대가 되면 이 말은 어쩌면 인생의 달관을 역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바보처럼 살았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바보가 아니다. 깨달음이다.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도 모른다.
바보처럼 산다는 것은 가장 현명한 일이기도 하다. 순수한 신념을 가진 바보라면 말이다. 신념이란 자꾸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직하게 그것을 지키는 바보라면 그의 삶은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똑똑한 사람들은 자꾸 늘어나고 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손해 볼 짓을 하지 않는 사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가, 기업가, 종교인, 평범한 사람들까지 남에게 지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논리를 만들고 그들의 주장을 펼친다. 그 똑똑한 머리로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세상물정에 어둡고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며 융통성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조미료가 되어 맛있는 요리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그들은 ‘믿음직한 바보들’이다. 바보처럼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눈앞에 욕심만보고 살면 나중에 꼭 후회한다. 세상을 가슴으로 보고 마음을 읽어야 한다. 너무 복잡하게 따지다보면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한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도 두려워서 실행을 못한다. 아무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가장 기억력이 좋은 바보는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 바보는 자기 몫을 나누는 사람이다. 가장 겸손한 바보는 남이 자신을 철저히 이용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가장 부유한 바보는 불쌍한 이웃에게 번 돈을 펑펑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바보 같은 삶은 살아 있을 때 아무도 그가 한 일을 모르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바보 같은 인격은 자신을 낮춰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천주교 인천교구장인 최기산 주교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에게 바보가 될 것을 제안한다. 주위에 버려진 강아지를 자기 집에 모아 기르는 사람, 공원의 쓰레기를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가는 사람, 굶주리는 아이들을 남모르게 후원하는 사람, 남의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바보처럼 여기는 세상의 눈도 많다. 그러나 그런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