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 환자들을 보살폈던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의 임종 직전 ‘깨달음’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들의 다섯 가지 후회는 평생 내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 직장생활에만 매진했던 것,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것, 오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 조금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고대 도가에서는 만물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고 했다. 변증적으로 생과 사를 연결하여 태어나면 죽는다. 세상만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살아가는 과정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살아 움직이는 동안에만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끝나면 그것이 죽음이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늙음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현재의 행복에 최선을 다함이 삶이고, 이러한 삶이 오래되어 편해짐이 늙음이고, 영원히 쉬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이다. 출생하여 죽음에 이르는 길목에 늙음이 있다. 늙음은 죽음보다 먼저 오고 심각한 문제를 동반한다. 인간은 자식들을 장성시키면 늙고 병들어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형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날 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수 없는 빈손이다.
삶이 시작되면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었고, 삶을 끝내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 보살핌은 사랑이다. 이 사랑이 있기에 의미를 갖고 살아간다. 삶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보지 못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오늘의 삶은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끝이 다가와도 지난 삶에 애절하게 매달린다.
모리 교수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마지막 삶의 순간을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누구나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현재의 삶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삶에는 지금보다 순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원죄에 대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이라고 한다. 죽음의 의미는 모든 생물이 겪는 생명 과정의 완전 정지 상태이다. 모든 생명체가 거쳐 가야 하는 단계가 죽음이다. 이 죽음이 있었기에 모든 생물의 문화와 생활패턴이 발전해왔다. 동물들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천적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자기들만의 생활방식과 몸 상태를 만든다. 사람도 살아남기 위하여 의식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곳을 종교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말로 ‘천국’ 또는 ‘하늘나라’가 있다. 천국이라는 용어는 천당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불교에서는 총 6단계의 천국이 존재하며 사천왕천, 야마천, 도리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이 존재한다. 지옥은 악하거나 불의한 사람의 영혼이 사후에 처벌을 받는 장소라는 사상이 대부분 종교들의 일반적 믿음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이승이라 하고, 사람이 죽은 뒤에 사는 세상을 저승이다.
대중적인 내세관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영적인 세상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내세관이다. 두 번째는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이 세상으로 태어나는데 이러한 재탄생이 계속된다는 내세관이다. 세 번째는 죽음과 동시에 그 개인은 영원히 소멸한다는 내세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는 첫 번째 내세관을 가지고 있다. 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두 번째 내세관이다. 유물론에서는 세 번째 내세관이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 항해가 끝나면 배에서 내려 뭍으로 올라간다. 배는 육신이요, 영혼은 뭍으로 올라가는 나그네이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이다. 어떤 이는 조금 살다가 어떤 이는 오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 소중한 시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과 이 세상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질 그날이 삶을 조용하게 마치는 날이라는 것을 안다. 그 순간이 지나도 별들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벽은 어제처럼 밝아오고 기쁨과 슬픔도 파도처럼 출렁인다는 것도 안다. 이 세상에서 온갖 노력으로 얻어진 것과 헛되이 집착한 것들을 그냥 두고 간다는 것도 안다.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이 아침도, 첫눈도,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없다. 사랑한다고 말한 그 부모들마저 떠나고 사랑도 없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어간다. 감출 수 없는 주름을 바라보고 변해 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하고 떠나간다. 살면서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이로 살기보다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