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1일자로 새로 개교한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대전의 둔산 지역에 위치한 신설 학교라서 모여드는 학생들도 특성이 천차만별이었다. 할 일도 많고 여러 학교에서 찾아온 학생들을 제자리에 서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부적응 학생지도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다고 선전되어 부적응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우리 반에도 그런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담임 앞에서는 잘 하면서 담임의 눈이 벗어나면 말썽을 부리기도 일쑤였다.
어느 날, 2년간 휴학했다가 복학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학부모는 잘 부탁한다며 죄지은 사람처럼 학생만 맡기고 갔다. 그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고 휴학했는데 이제 완치가 되었다고 했고, 의사의 소견서도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체격도 크고 잘 생긴 미남형이다. 말이 없고 대답만 한다. 그런 학생을 지도하는 일은 참으로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지도 한다. 그 학생은 저녁 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있다가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침 늦게 일어난다. 전화하면 그 때까지 자고 있다. 부모는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이 가장 큰 일과이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될 즈음 복도를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교실로 들어서는 모습만으로도 다른 학생들은 공포를 느낀다. 생활지도만으로는 행동수정이 어려웠다. 수업 중에는 맨 뒤 좌석에 앉아 몸을 뒤로 젖치고 수업하는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여교사들은 무섭다고 했다. 어떤 때는 엎드려 자기도 하지만 말썽은 부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한 학생이 찾아와 제보를 해준다. 그 학생이 수업만 끝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을 내며 거리를 질주한다고 한다. 다음날 상담을 했다. 오토바이를 타면 마음이 후련하다고 한다. 그래도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반복되었다. 너무도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어 하는 수 없이 학부모를 소환하여 2달 만에 자퇴 조치를 취했다.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하여 취한 조치지만 마음 한쪽은 어디가 비어있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는 그 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되었다. 반 강제적으로 중요 과목을 중심으로 방학 중 보충 수업이 계속 되었다. 나도 수업이 있는 날은 학습지도도 하고 학급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문제가 있는 학생들도 잘 따라주었다. 2주간 보충 수업이 진행되는데 수업이 없는 날이 있어서 그날은 마지막 시간에 수업하는 교사가 귀가 지도를 하여야 했다. 그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하신 선생님은 문제가 없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처럼 수업이 끝나면 간단히 문단속을 하고 가라고만 했다. 그러자 몇 명의 학생들이 교실에 남아 담임도 없고 하니 담배나 한 대씩 피우고 가자며 함께 동조하였다. 뒤처리만 잘 했어도 될 일을 담배를 피우고 남은 담배꽁초를 교실청소용 기름걸레 통에 집어넣었다. 그 청소용 콩기름 걸레는 딱딱하게 굳어져 있어 불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들은 문을 잠그고 갔다. 담배꽁초의 불씨는 남아 기름걸레에 연기를 내며 시간이 흘렀다. 당직을 하시던 분이 순찰을 하다 교실 안이 연기로 가득한 것을 발견하였다. 뒤편 게시판 부근의 벽을 타고 천장까지 검게 그을리고 천장의 석고보드의 일부가 타 들어가기 적진이었다. 소화기를 동원하여 화재를 진압하고 교장선생님이 직원들을 소집하여 사건 전말을 말했다. 신설학교를 한 번에 불태울 뻔 했다고 가슴을 조였다. 사실 나는 과오가 없다. 출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무슨 과실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우리반 학생들이 저지른 일이라서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직원회의 결과, 학생들도 모르고 교육청 당국도 모르는 일이고, 피해도 적고, 보기 흉한 부분은 덧칠하고, 청소를 깨끗이 하면 별 문제가 없으니 그냥 숨기고 가자는 의견이 앞섰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재산적 피해와 국가적 손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 때마다 자다가고 잠이 깨었다. 화제 사건으로 많은 어려움을 주던 당사자는 천신만고 끝에 대전 시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잘 다닌다는 안부가 오가더니 여름방학 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소년원에 같다는 말을 졸업생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적응을 못하고 소년원에 갔다니 너무 허탈하고 안타깝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버스 안에서부터 많은 사연을 만들고 일정이 시작되었다. 장기자랑을 할 때는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한 수 위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거칠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범학생들도 많고 순박한 마음을 가진 여학생들도 많았다. 사건은 저녁에 일어났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방별로 취침시간이 되었다. 베개가 사람 수에 모자란 방이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옆방을 습격하여 베개를 가지고 오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모의를 했다. 옆방으로 가서 불을 끄고 베개를 탈취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창문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어지고, 유리창 조각에 앉아 있던 학생이 다쳤다. 그 학생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수확여행을 망쳤다. 학부모를 만나 자초지정을 말하고 싶었다. 사고를 당한 학생에게 미안하고 학부모님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려고 가정환경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런데 가정이 복잡했다. 아빠가 재혼을 했고 새엄마가 데리고 온 딸이 있는데 우리 학교 여자반 ○○○이란다. 그 반은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반이고 그 여학생은 글도 잘 쓰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학년 초부터 잘 따르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학생이었다.
당황하기보다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엄마가 재혼할 때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와 새로운 식구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수확여행의 마지막 날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귀가 시키고 사고 당한 학생의 집에 전화를 걸어 전후 사정을 말하고 치료 결과도 좋다고 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오히려 위로 해주었다. 사고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대전광역시교육 주관 백일장 대회가 있었다. 글 솜씨가 있는 학생들 3명을 우리 학교 대표로 나가기로 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중에는 수학여행 때 사고를 당한 학생과 함께 사는 여학생도 있었다. 교내 문예작품 공모를 하면 항상 우수한 작품을 제출했기 때문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백일장 대회가 있는 날 우리 학교 교무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끼리만 갔다. 다음날 출근하니 이쪽저쪽에서 수군수군 야단이다. 왜냐고 물으니 어제 참석하지 못한 학생이 엄마와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엄마는 전남편이고 딸은 친아버지인 묘지 앞에서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다. 신문에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된 내용으로 확인하였다. 누구에게도 다시 물어볼 수 없었다. 그 여학생의 교실에 수업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꽃다발이 그녀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에게 조금이라도 말할 수 없었느냐고 눈으로만 말했다. 나와 반 친구들은 한참을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정적을 깨뜨리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엄마만 믿고 마냥 죽음까지도 따라갔다. ‘하늘의 뜻’이라고 체념하고 의탁한 것 같다. 슬픔에 빠져 그 순간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 많은 여학생의 가냘픈 몸과 해맑은 영혼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산자락을 타고 묻힌 묘지 옆에서 계절을 잃어버렸다.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나 죽음까지 함께 한 모녀의 죽음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잊혀졌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 속에 곱고, 붉고, 억울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