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뻐꾸기 유전자

명명가 2013. 9. 27. 20:03

   저 쪽 산머리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저 뻐꾸기 무슨 일을 저지르는 모양이다산밭에서 농작물을 돌보다가 밭 모서리 나무그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노라니 주위가 조용하다. 저 쪽 산머리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저 뻐꾸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 모양이다. ‘뻐꾹 뻐꾹하고 우는 놈은 수컷이고 삐삐삐하고 우는 놈은 암컷이다. 사람들은 뻐꾸기를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새라고 부정적 시각으로 본다.

뻐꾸기는 스스로 집도 만들지 못하고, 알을 품지도 못한다. 뻐꾸기는 기생하기 쉬운 상대를 고른다. 덩치가 작은 멧새, 종달새, 노랑때까치 등이 대상이다. 둥지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몰래 들어가 알을 낳고 가버린다. 하나씩만 알을 낳아 맡긴다. 그들은 주인 새가 집을 비운 사이 잽싸게 알을 낳고 나오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생존번식의 유전자가 색다르다. 이런 기구한 연분으로 오랜 세월 번식에 성공하여 살아왔다. 알에서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다른 새보다 빨라 1012일쯤이면 먼저 부화된다. 타고난 힘도 세다. 부화 후 1, 2일 사이에 같은 둥우리에 있는 어미 새의 알과 새끼를 날갯죽지를 뒤틀어 둥지 바깥으로 내쳐버리고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그것도 모르는 어미 새는 뻐꾸기 새끼를 정성껏 보살핀다. 2023일간 다른 새의 먹이까지 받아먹고 자란 후 둥지를 떠난다. 둥지를 떠난 후에도 7일 이상이나 먹이를 받아먹는다. 어미 뻐꾸기는 주변을 맴돌며 자기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렸다가 부화하자마자 하루 종일 울어 새끼에게 진짜 어미가 곁에 있음을 울음소리로 알린다. 뻐꾸기 새끼도 먹이를 가져다주는 어미 새를 울음소리로 속인다. 먹이를 많이 받아먹기 위해 삐약소리를 쉴 새 없이 외친다. 그러면 먹이를 자주 먹을 수 있다. 어미 새는 잘 자라는 뻐꾸기 새끼가 마냥 귀엽고 대견스럽다. 그러나 뻐꾸기 새끼는 지금까지 키워준 어미 새를 언제 보았느냐는 듯이 멀리 떠나버린다.

탁란(brood parasitism)’은 자기 새끼를 스스로 키우지 않고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게 하는 습성을 말한다. 세상에 서식하는 새의 1%에 해당하는 약 100종이 진성 탁란조로 알려져 있다. 이들 탁란조는 6개의 분류군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새가 뻐꾸기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뻐꾸기의 삶을 닮기도 한다. 인간도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뻐꾸기만 염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염치없는 사람도 있다.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업둥이와 입양한 아이들이 배신하는 이야기도 가끔 들을 수 있다. 어미 새처럼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맞아들여 지극 정성으로 길렀지만 배신당하는 사람도 있다. 이 아이들은 성장하면 해를 끼치거나 뻐꾸기 새끼처럼 그냥 그렇게 그들의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뻐꾸기이나 사람이나 이기적인 삶은 매 한 가지이다.

뻐꾸기는 배로 낳은 어미와 가슴으로 낳은 어미가 있다. 인간도 배로 낳은 사람과 마음으로 낳은 사람이 있다. 배은망덕한 인간이 없어지고 마음이 변치 않는 사랑이 이어지려면 뻐꾸기 유전자는 필요 없다. 뻐꾸기 유전자가 없어지면 자기를 아끼고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사람들의 가슴에 고통을 안겨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씨를 뿌리는 것이 낭비가 아니듯이 선으로 이웃을 돕는 것도 허사가 아니다.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아끼는 것이 현실에 맞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정신이고, 뻐꾸기 유전자를 없애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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