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밭 세상
산밭은 자연 학습장이다.
산밭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승용차로 15분 정도 달려 중고자동차 매매 센터로 들어가면 산밭에 갈 수 있다. 주차장 맨 위쪽에 차를 세우고 10m 쯤 올라가면 400평 남짓한 산밭이 나온다. 경계면을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의 삶이 함께 한다. 한쪽은 중고자동차 매매센터이고, 다른 한 쪽에는 산밭이 있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밭이다.
숲속에는 노래하는 산비둘기, 까치, 소쩍새, 꿩 등 여러 텃새들이 함께 살고, 나무 위에는 매미, 장수풍뎅이 등이 살며, 땅 속에는 벌레와 미생물이 사는가 하면 두더지가 통로를 만들어 놓고 오고간다. 두더지를 쫒으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곳이다. 이들은 복잡하게 얽혀 서로 의지하고 산다.
바람 부는 세상에도 흔들이지 않는 이 산밭에 들어서면 세상이 맑아진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책임질 사람이 있는 곳이다. 날마다 맑은 공기로 새롭게 시작한다. 그곳에 앉으면 그에 맞는 행동과 가치관이 따라 나온다.
산밭이 이렇게 말한다.
“다 벗어 놓게.”
“네가 여기에 온 연유를 알지.”
“작은 삶을 보고 싶지.”
“가장 순박한 삶이 여기에 있네.”
“생명의 신비를 보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묻어놓을 것이 있어 여기에 왔네.”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고 싶네.”
“관념적인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네.”
나무 그늘 밑에 휴식처를 만들었다. 산새들이 소란스럽게 우짖는다. 노랫소리로 알고 차를 마신다. 향이 다르다. 재활용할 물건들을 이용하여 의자와 깔방석, 테이블로 둔갑시켰다. 밭 주변 둑은 재활용 플랜카드로 풀이 자라지 못하게 덮었다. 밭에 사는 식구들을 위하여 하늘의 뜻이 오래 가도록 흘러가는 빗물을 받아 놓는다.
생명의 신비는 그대로 우주의 조화다. 그 조화는 전부터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더 단순해진다. 너그러운 산밭에 앉아 아무 트집 없이 삶을 말한다. 산새들이 드나들면 손끝이 쉬어가고 나비가 날아들면 작은 깨달음을 묻는다. 놀다가 지루하면 꽃방에 들어가 본다. 밭 모서리에 무리지어 피는 꽃들과 농작물의 키를 대본다. 밭 그늘에 손자국을 그린다. 주변의 모양을 단순하게 마무리 짓는다.
상치, 오이, 풋고추, 가지, 들깨, 강낭콩, 완두콩, 호박, 옥수수, 고구마, 참깨, 파, 팥, 부추, 토마토, 참외, 수박, 더덕, 대파, 매실나무, 오미자가 우리 식구들이다. 이곳 식구들은 알몸으로 내게 다가와 부끄럽다고 숨겨 달라고 한다. 찰옥수수가 줄줄이 서 있다. 알록달록한 옥수수 알이 여물어 간다. 팥은 작은 나비 모양의 꽃이 피고 꼬투리가 매달린다. 꼬투리 안에는 10 남짓한 씨앗이 들어앉는다. 비타민이 많은 팥알은 자줏빛을 띠는데 그 빛깔이 곱다. 고추의 하얀 꽃에서 초록색 고추가 열리고 빨간 고추로 변한다. 오이, 녹두, 토마토에는 노란 꽃이 피고 초록색 오이와 까만 녹두가 매달리고 빨간 토마토도 열린다. 가지의 연분홍 꽃에서는 갈색의 가지가 열리고, 초롱 모양의 참깨 흰 꽃에서는 수많은 하얀 씨앗이 쏟아지고, 노란색 호박꽃에서 연붉은 늙은 호박도 열린다.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호박덩굴이 따라오고 저물녘 노을에 자화상이 그려진다. 열매를 따다 먼저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과 나눈다.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면 산밭 세상도 저문다. 산밭 세상이 저 혼자 내일을 준비하면 별들이 내려앉아 이슬을 먹고 내 꿈을 꾼다. 산밭의 농작물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언(無言)의 스승이고 고마운 친구이다.
오이를 수확하고 있다.
산밭 풍경
호박을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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