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34599번 송아지를 샀다.
손자의 추석명절이다. 추석 전날에 태권도 학원에서 합판 1장과 사랑하는 가족상이라는 상장을 가지고 왔다. 내일 추석날 아침에 추석 예배를 드리고 상장 수여식과 합판격파 시범을 보이고 사진촬영을 해야 한다며 기분이 들떠 있다.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태권도복을 입는다. 가족들이 모여든다. 경건한 마음으로 추석예배를 본다. 성경말씀을 윤독하는데 세민이도 잘 읽는다. 예배가 끝나고 세민이의 특별한 이벤트를 시작한다.
학원에서 가지고 온 ‘가족에게 드리는 글’을 읽는다.
‘아낌없는 사랑과 행복을 주는 우리가족, 늘 제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도록 챙겨주시고 마음 써 주시는 가족의 사랑으로 제가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자랐습니다. 항상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효도하는 손자가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사랑하는 명세민’
읽는 모습과 글의 내용에 가족 모두가 감동하여 박수를 보낸다. 태권도학원에서 아빠가 합판을 잡고 엄마가 사진 촬영을 하라고 했단다. 합판 격파 시범을 보인다. 기합소리와 함께 앞차기로 합판이 격파된다. 식구들이 모두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다. 손자는 일시에 스타가 되었다. 올 추석 첫 번째 행사이다.
두 번째 행사는 시골에 가서 성묘하기와 알밤 줍기이다. 시골에서 많은 식구들이 모였다. 손자 눈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만큼 많다. 성묘 길에 올랐다. 나의 아버지 묘지가 손자에게는 그냥 조상 묘지일 뿐이다. 표석에 새겨진 자손들의 이름 중에 손자의 이름이 있다. 작은 할아버지들이 그 줄기를 설명해준다. 이어 목사인 작은 할아버지의 대표 기도로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예의를 다한다. 내려오는 길에 밤을 줍는다. 손자가 밤을 줍기 위하여 고무장화도 싣고, 고무장갑도 끼고, 밤을 주워 담을 비닐 봉투도 준비하였다. 각자 흩어져 여기저기에서 밤을 줍는다. 경사진 면을 따라 밤이 많다고 소리를 높인다. 손자도 넘어지지 않고 잘 줍는다. 시간이 흐른 후에 주워온 밤을 보니 손자도 검정비닐봉투에 가득하다. 무거울 것 같아 큰 포대에 함께 모으자고 하니 안 된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자기가 주운 것은 어은동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기특하여 손자가 주운 밤만 따로 잘 묶어 보관하였다.
세 번째 행사는 손자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이번 추석에 시골에 가면 자기 송아지 한 마리를 산다고 말했었다. 돈은 고모가 준다고 했다. 시골 작은 할아버지 댁에는 축사에 많은 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마리를 산다는 것이다. 우리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송아지 사러 축사로 가자는 것이다. 우리는 축사로 향했다. 축사에 도착하자마자
“야! 소들이 많다. 어떤 소를 살까?”
“작은 송아지를 살 거예요.”
“송아지도 많다. 어떤 송아지를 살 것인지 골라 보자.”
“송아지 귀에는 이름 대신 고유 번호가 있지.”
“그 번호가 이름이야.”
“제일 예쁜 송아지를 고를 거예요.”
“세민이가 골라 봐라.”
“저기, 34599번이예요. 저 송아지를 살 거예요.”
“번호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엄마가 적어 놓아요.”
“좋아, 엄마가 휴대폰에 저장해 놓을 게.”
“지금부터 34599번은 세민이 소다.”
작은 할아버지가 말한다. 이제 거래는 끝났다.
눈과 귀가 크고 코는 벌름거린다. 몸통은 토실토실하고 매끈하여 참으로 귀엽게 생긴 송아지이다. 모두 좋다고 한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34599번이 세민이 소다.”
만면에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보고 또 본다. 송아지들의 틈에 끼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다음에 올 때까지 무럭무럭 클 것을 약속하고 축사에서 나와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있던 식구들이 묻는다.
“세민아, 송아지 잘 샀어요.”
“네, 그런데 돈은 안 줬어요. 공짜로 주는 것 같았어요.”
모두 크게 웃는다.
(2015년 추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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