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젖먹이 손자가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손잡고 유치원에 가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5일 만에 혼자 등하교한다. 불안한 마음에 이웃집 아이와 함께 가라고 했다. 전송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초등학교에서의 생활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매우 행복해 한다.
초등학생 대부분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학원으로 간다. 보내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초등학생 사교육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94.6%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과목은 영어였다. 그 다음으로 저학년은 체육(49.7%), 음악(45.9%), 수학(36.7%), 국어(36.7%), 미술(31.4%) 과목이었다.
사교육은 우리의 현실을 앞서 간다. 사교육의 소용돌이 현장이다. 손자도 영어, 수학, 책 읽기, 컴퓨터, 태권도를 선택했다. 태권도 품새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대련 자세를 사진으로 찍어 액자에 넣어 책상 앞에 진열하기도 하고, 대전시내 태권도 가족이 모인 한밭체육관에서 승단 심사를 보기도 한다. 학원의 진도를 따라 가려면 집안 식구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준비물 챙기기, 영어 발음 익히기, 과제물 점검, 영어 단어 쓰기 시험 준비, 소마수학 과제물 풀기 등 많기도 하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만 주변 아이들이 모두 조직적으로 배우고 있다. 영어단어 받아쓰기 연습을 하지 않고 학원에 가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 그렇게 10달을 견디니 놀랄 만큼 영어실력이 향상되었다. 이 영어학원의 장점은 철저히 수준별 그룹지도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원어민의 발음 듣고 따라 읽기, 영어 동화책 읽기, 문법 익히기, 1주일마다 새로운 내용의 글쓰기 등 아이들이 소화하기에 벅찬 내용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언어를 습득한다. 외국어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영어를 공부하는 아이들이 우수한 아이들도 많아 옆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도 부모를 대신해 손자의 영어교육에 헌신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한자도 읽고, 영어 동화책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내가 영어를 읽어주면
“할아버지 영어 발음은 이상해요.”
“왜.”
“딱딱해요. 미국에는 갔다 왔어요.”하며 흠을 잡는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그래도 할아버지가 영어 공부를 도와주니 좋지.”
“네.”
“할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그럼. 세민이는 똑똑하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이야기가 조금 당황스럽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귀에 거슬린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어떻게 나이를 먹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하늘이 파랗고 마음도 파랗다.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마음으로 어른들을 만나면 어른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렇게 손자의 초등학교 생활을 들여다보며 오늘도 새로운 할아버지의 길을 걷는다. 이 일들은 손자가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라는 손자 사랑이다. 손자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은 것이 혈육의 정이다.
(2015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