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동동주 담그는 기술 중 하나를 지나쳤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설날이 되면 우리 집 윗방에 쾌쾌한 누룩냄새와 술 익는 냄새가 났었다. 술을 좋아하시는 명절 손님들을 위해서 어머니는 자주 동동주를 담그셨는데 우리 어머니가 담그신 술맛은 2%가 부족하였다.
술밥은 언제나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누룩가루에 골고루 잘 섞어 버무려서 익숙한 솜씨로 아주 정성스럽게 술독에 담으시고 언제나 똑같이 포대자루를 반으로 접어 푹 덮고 그 위에 또 헌 이불을 덧덮어 놓았다.
며칠이 지나 술독을 열었을 때는 부글부글 가스가 나오고 술이 익는 냄새가 위로 향했다. 쌉싸래한 묘한 맛과 향기가 났었다. 누룩냄새와 뒤범벅이 된 맑은 술에는 잘 삭아서 한껏 가벼워진 밥알이 동동 떠올랐다. 밥알이 누르스름한 동동주를 떠서 작은 항아리에 옮겨 놓았다. 반갑고 귀한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그때 내놓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며칠이 지나 명절날이 되고 손님들이 방에 들어가면 술상도 따라 들어갔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주전자의 술이 손님을 맞이하였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 집 술은 신맛이 있어요. 드셔 보세요.”
손님들이 한 잔씩 드시고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약간 시지만 좋네요.”
그러나 두세 잔 정도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술을 다른 집보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인이 되신 부모님이 고향집에서 술을 담그면 왜 술에 신맛이 났었는지를 전통술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처남의 말을 듣고 알았다. 우리 부모님이 술을 담글 때 빠뜨린 기술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술독에 다른 물건을 담아 두었다가 깨끗하게 씻어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물로 술독의 안을 깨끗이 닦으면 되는 줄 알았다. 사실은 술독 안을 볏짚 뭉치나 신문지에 불을 지펴 술독 안에 넣고 태워 술독을 밖에서 만지면 뜨거울 정도로 소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독한 후에 술독 안을 물로 깨끗이 씻어 사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그래서 그 술독에 술을 담그면 신맛이 났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해마다 그 과정을 빼고 술을 담갔으니 우리 집 술 맛은 항상 신맛이 났었다.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 동동주는 바로 정이었다. 구태여 잔을 부딪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 시절도 까맣게 잊혀지고, 옛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반갑고 기분이 좋아서 술맛도 모르면서 마신다. 산행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정서에 딱 맞는 막걸리나 동동주를 가끔 마신다. 옛 친구를 만나서 지나온 이야기나 세상사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그 자리에는 막걸리가 반가움과 즐거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