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삼만 바위

명명가 2017. 3. 3. 19:59

  

종친회 고향 모임에서 옛날 죽마고우들을 만났다. 그들도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7촌 후배가 말한다.

아저씨, 저기 바위가 있는 뒷산을 우리 아버지께서 옛날에 쌀 3가마니 값을 받고 아저씨 댁에 팔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헐값에 팔았지요.”

⋯⋯, 그 산은 우리 산인데.”

“50여 년 전에는 구입할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온통 바위로 덮인 산인데 별 쓸모가 없어 살 사람은 없고 이사를 가야 하는 입장에서 당숙인 우리 아버지에게 팔았던 것 같아.”

돌이켜 생각하면 그 당시 쌀값은 매우 비쌌고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물가는 오르고 쌀값은 떨어졌으니 지금 생각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 못되었다고 여겨진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쌀 3가마니 값만 생각하고 지금 그 땅의 공시지가로만 비교해 보면 50년 만에 50배가 오른 것이니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50여 년 전의 쌀 3가마니 값은 그 당시 6개월분 하숙비이었다. 이 돈을 50년간 복리로 저축했다면 지금 이 산의 가격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 삼만 바위산의 높이는 해발 130m 정도 된다. 8부 능선에 바위가 많아 동네 어르신들이 삼만 바위라고 불렀다.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뒷산이 온통 벌거숭이 산이라 마을에서 뒷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삼만 바위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이 바위에 올라 책도 읽고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앞날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이 삼만 바위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 정경은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정경이 보이고 들판 한 가운데를 가끔 지나가는 기차도 보이고 앞산 너머로 아름다운 저수지도 보였다.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여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삼만 바위는 보이지도 않고 그 바위까지 올라가는 길도 없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이 바위가 얼굴을 내밀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군청에서 이 산 전체를 간벌하겠다는 동의서를 받아가는 것을 보면 삼만 바위가 그 옛날처럼 고향마을의 얼굴로 다시 나타날 것 같다.

모든 물건의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눌 수 있다. 이 산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담겨 있고 나의 가치관이 담겨 있을 뿐이지 가격이 상승할 만한 교환의 가치나 사용의 가치는 적다. 이런 기준이 부자와 빈자로 나누는 가치라 해도 나는 내 고향 마을의 얼굴이고 부모님의 유산인 삼만 바위산을 그냥 오래 소유하고 싶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의 굴레  (0) 2017.04.04
노년의 삶  (0) 2017.03.16
허수아비의 깨달음  (0) 2017.02.27
길 위에서  (0) 2017.02.07
어머니의 동동주  (0)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