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일은 꿈이 되고 노력하지 않는 일은 욕심이 된다.
내가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등하교하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그 길은 내 청소년기의 한 마당이었고 꿈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날을 개척했다. 용돈이 궁했던 나는 책을 산다는 거짓말로 용돈을 탔다.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책값을 잘 주셨다. 내 행동을 부모님이 모르시고 넘어갔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해주셨는지 몰라도 책값은 말만하면 잘 나왔다. 구입한 책을 한 번도 확인한 적은 없었다. 만약 그 때 가져간 돈에 맞는 책을 보자고 확인했더라면 나는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물에 밥을 말아먹는 버릇이 있다. 위장에 부담이 가서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숭늉에 밥을 자주 말아먹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 늦게 자기 때문에 잠이 모자랐다. 시간이 촉박하여 잠에서 깨어 부리나케 세수하고 밥을 먹고 걸어서 학교에 가야 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밥을 빨리 먹는 방법으로 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 때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 숭늉에 밥을 말아먹으면 밥이 잘 넘어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여름이 되면 아침 이슬이 맺혀 있는 풀을 발로 스치며 걸어야 했고, 겨울철이 되어 겨울바람을 안고 눈이 쌓인 길을 걷노라면 발이 꽁꽁 얼어붙곤 했다. 뒷산을 넘고 철길을 따라 가면 높은 산 고개가 또 있었다. 그 고개를 넘어가야 학교로 갈 수 있었고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에는 밤새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들이 가지를 부러뜨린 채 기울어져 있었고 ‘우두둑’ 소리가 곁에서 들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등하교 길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그 산길은 무서웠다. 어렵고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하니 힘들었을 때 변화의 용기를 낸 것이 기회였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목표일까?
욕심 없이 발전할 수 있을까?
욕심이 없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했다. 인간이 사는 이유는 어쩌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누구나 욕심이 있다. 욕심과 목표는 다르다. 욕심은 막연하고, 눈, 귀의 자극을 통해 결정하고, 늘 피곤하며 수시로 변한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마음의 울림을 통해 결정하고 마음가짐도 활기차고 변동성에 의해 변한다. 목표 없는 욕심은 줏대 없는 사람을 만들고, 욕심 없는 목표는 시간을 낭비한다. 올바른 목표와 어울리는 욕심은 살아가는 힘이 된다.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꿈은 단지 욕심일 뿐이다. 욕심은 한 사람의 가치를 높이지 못한다. 노력하면 꿈이 되고 노력이 없으면 욕심이 된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는 것보다 노력하는 것이 쉽다고 말한다. 미움, 증오, 시기, 질투와 같은 감정은 욕심으로부터 발생한다. 꿈을 한번 이뤄본 사람은 그 다음부터 수월하게 꿈을 이룬다.
욕심이 많을수록 자유는 줄어든다. 욕심은 자신을 안에 가두고 자신만을 생각하게 만든다. 가질수록 모자라는 것이 권력욕심. 재물욕심, 명예욕심이다. 권력과 재물과 명예는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고, 빌린 것은 언젠가 되돌려 주어야 한다. 과욕은 상실감으로 변하여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욕심은 움켜쥐려고만 하기 때문에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산만해진다. 문제는 더 크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으려고 목표가 바뀌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자신이 가진 것과 바라는 것 사이가 가까울수록 만족도는 높아진다.
나무는 한자리에서 주변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주변을 탓하지 않고 올곧게 자란다. 물이 많든 적든 땅이 비옥하든 토박하든 뿌리내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장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보면 오늘에 충실하게 되고, 덜 조급하게 되고, 자신의 욕심에 덜 끌리게 된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