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더 강한 불평등이 온다

명명가 2022. 1. 7. 13:45

누군가는 오늘의 현실이 과거에 비하여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몇십 년 전만 해도 희망과 낭만이 있었다. 열심히 하기만 하면 대통령도 되고 학자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니체는 삶은 끊임없이 권력을 쟁취하는 노력이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세상에 관철하기 위한 노력이 불평등과 분열로 이어지면 안 된다. 우리가 공부하고 직장을 가지는 것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하여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 일원의 의무와 책무를 행한다.

 

불평등은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 사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다. 일반적인 불평등은 주로 법 앞에서 불평등을 의미하며 경제적 불평등은 심각한 빈부 격차로 나타난다. 조선 시대에는 사회 불평등의 핵심이 양반과 상민 등의 신분제도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불평등은 소득격차, 부모의 능력 차이, 남녀 간의 불평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 정보 격차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불평등 현상으로는 성 불평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민자, 북한 이탈 주민 등의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 불평등이 있고, 신체적, 문화적 특성 때문에 구성원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평등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이뤄냈다고 착각하고, 실패한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현대의 사회 불평등은 재산과 소득 분배의 격차에서 비롯된 불평등이 많다. 경제적 불평등은 부의 불평등한 축적으로 발생한 사회 불평등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과 양질의 주거, 건강 관리, 의료 등에 의해 접근할 수 없을 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의 평균 소득은 아시아에서 최상위권이지만 하위 50%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1/5에 못 미칠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난다. 선진국에서 살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큰 국민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의 양극화와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내적 분화가 일어났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경제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커졌다. 그런데도 거대 도시화는 막을 수 없다.

 

극단적인 불평등 상황을 정당화하는 가장 흔한 답변으로 자신의 노력, 지적 능력, 진취성의 차이에 따라서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일찍 일어나 온종일 열심히 현명하게 일하여 부유해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늦잠 자고,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에서 겪는 소득, , 기회의 불평등은 임금 차등이 아니라 자본 수익의 차등으로부터 추동된다. 누군가는 최저임금을 가까스로 맞춰주는 시간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허덕이고,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부동산, 채권, 주식 대량 소유자가 되기도 한다. 특권의 대물림은 직접적인 상속뿐만 아니다. 특권은 양질의 보건의료부터 영양가 있는 음식, 학습 개인 교습, 양질의 학교 교육, 풍부한 생활 경험, 부채 걱정 없는 유학 교육, 무급 인턴 경험 등이 있다. 이처럼 풍요로운 가족 관계에서는 각종 지원책이 자녀들에게 제공된다. 성장 환경부터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는 본질적인 양극화 상황은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난다.

 

오늘날의 미국은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다. 최상위 스무 명의 억만장자가 미국 인구 하위 50%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경제대학 세계 불평등 연구소가 이런 내용의 보고를 내놨다. 세계 상위 10%의 부자가 전체 소득의 52%와 자산의 76%를 점유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소득 상황을 보면, 하위 50%의 평균 소득은 연간 1,232만 원으로 전체 소득의 16%, 상위 10%는 평균 17,850만 원을 벌어 전체의 4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IL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부의 대부분이 최상위층에 집중되는 현상이 극도로 심해졌다라고 했다. 보고서는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으로 글로벌 억만장자들을 겨냥한 부유세를 제안했다. WIL“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전 세계 6,216만 명에 재산 수준에 따라 연간 0.6~8.3%의 부유세를 부과하면 전 세계 소득의 1.6%를 세금으로 거둬들일 수 있다라며 이를 교육과 보건, 기후 변화 대응 등에 투입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쓸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백신 불평등을 보면,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나 남아공의 백신 접종률은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11125일 기준으로 남아공은 23.51%, 보츠와나는 19.58%의 접종 완료율을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에 비해 아주 낮은 수준이다. 백신 불평등 원인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싹쓸이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전 세계에 백신 미접종자가 많으면 그만큼 변이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대유행은 장기화할 것이다. 백신 불평등의 결과는 팬데믹을 더 오래가게 할 것이다. WHO 사무총장은 온라인에 올린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희망' 글에서 "불평등이 길게 이어질수록 우리가 예상하지도, 예방하지도 못할 변이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라면서 "불평등을 끝내야만 팬데믹이 끝나고, 전 세계가 겪는 악몽도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 불평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주택문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갈수록 우리의 경제 불평등을 무겁게 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람으로 느끼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주택을 구매해서 자신의 집에서 사는 것인데 주택 구매가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삶의 희망 하나가 줄어들게 된다. 이런 사회 불평등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서민들이 자신의 집을 소유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육의 불평등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심각하다. 선진국과 후진국, 도시와 농촌, 농촌과 오지로 나뉘어 교육격차도 심하고 교육 기회마저 불평등이 존재한다. 우리가 교육의 수준 차이가 없이 같은 질의 교육을 해도 같은 교육 결과를 가져온 사례는 없다. 상대적 차이 및 서열들을 분류한다면 사람들 간, 학교 간 차이는 불가피하다. 좁은 의미에서 교육 불평등은 교육 기회와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말한다. 교육 불평등은 세대 간 대물림이다. 있는 집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들어가고, 졸업한 다음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다시 그들의 아들딸이 같은 경로를 밟을 확률이 높다. 본인 세대에 비해 다음 세대인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기를 원한다. 기성세대는 교육 불평등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기 오지마을의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는 현장이 있다.

 

인도 히말라야의 라다크 오지에 자리한 마을의 아버지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인더스강 상류, 잔스카르강이 얼어붙는 시기를 기다려 얼음 담요라 불리는 차다 chaddar’를 걷는다. 눈으로 길이 막히는 1~2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을 학교가 있는 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학교에 가는 방법은 히말라야산맥 사이를 흐르는 잔스카르강을 10여 일간 걸어서 건너는 방법뿐이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지만 자식들의 꿈을 위해 아버지들은 이 등굣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도의 험한 오지, ‘cha’라는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하여 눈 덮인 혹독한 산길과 물길을 죽음을 무릅쓰고 학교에 데려다준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교육만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이다. 바지를 벗고 장화만 신고 아이들을 업고서 얼음 같은 물을 건넌다. 긴 여정 끝에 1년을 헤어져 있어야 하는 자식들을 학교에 들여보내고 지켜보는 아비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모의 힘이다. 히말라야의 잔스카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대단한 교육열을 지닌 사람들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머나먼 유학의 길을 떠난다. 부모의 뜻을 100% 믿고 나이에 맞지 않은 인내와 끈기로 학교 가는 길을 견뎌낸다.

 

중국 쓰촨성에 있는 대량산에는 전기는 물론 수도시설도 없는 오지마을이다. 2가 넘는 이 산에 전교생이 70명인 학교가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굣길을 걸어야 한다. 사다리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90도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오르며 등교 시간만 4시간이 걸리는 학생도 있다. 아이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는 돈조차 제대로 못 세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마을은 산꼭대기 비탈에 약 20여 호의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는 식수가 확보되어 있고, 농지가 비탈밭이며, 가옥은 모두 기와를 얹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대체로 영양 상태가 좋고 순박해 보인다. 교통만 좋으면 실생활은 행복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배우겠다는 향학열로 빛난다. 당나귀 등에는 올망졸망 곡식 자루들이 실렸고 그 위에 한 어린이가 앉았다. 바위 구멍으로 난 길을 걸어가는 그 당나귀 발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이고, 발을 헛디디면 당나귀와 아이는 목숨을 건지기 어렵다. 바위를 뚫어낸 길도 양 갈래 길이고, 산등성이를 타고 돈다.

 

콜롬비아 열대 우림 과타벨라 인근 깊은 산속 마을에 사는 12살 소녀 로라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계곡에 설치된 강철 케이블에 몸을 싣고 시속 60km가 넘는 아찔한 비행을 한다. 과타벨라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남동쪽으로 64km 정도 떨어진 산간 지역이다. ‘로라가 다니는 학교는 집에서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나타나는 계곡 건너편 마을에 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으면 학교까지 6시간을 걸어야 한다. 외줄 타기를 해도 학교까지는 먼 거리이고, 아침 일찍 서둘러도 지각하기 일쑤다. 더구나 날씨가 나쁘거나 부모님이 바쁜 날이면 학교를 빠질 수밖에 없다. 겁이 많은 로라는 아직 혼자서 케이블을 타지 못한다. 결국 유급을 당한 로라는 자기보다 어린아이들과 수업을 듣는다. ‘로라네 가족이 불편한 산속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산은 땅이 비옥해 바나나와 레몬 농사는 늘 풍작이기 때문이다. 수확한 작물은 자루에 담아 케이블로 보내니 운반비 걱정도 없다. 방목해 키우는 소들은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 불편하고 위험한 산속의 삶이지만, 풍요로운 자연이 있기에 산속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식들의 등굣길에서 희망을 찾는다. 어느 곳에 살든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그곳에는 희망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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