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장마 끝자락,
산길은 낯익은 잡풀들이 지워버렸네.
혼자 오르는 길가에 작은 밤송이들이 벌써 마중을 나왔네.
뒷산 중턱에 마주한 묘비가 그 때 그 십자가 묘비였네.
그 묘비를 다시 한 번 혼자 마음으로 보았네. 앞면에는 중앙 위쪽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 부모님들의 교회 직분과 성함, 생년월일이 있고 뒷면에는 자손들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네.
내 줄기가 새겨진 이 묘비는 삶의 방향을 말하고 있네.
병상의 당신 모습이 오늘은 묘비 앞에 영상으로 바뀌었네.
내일은 논밭에 나가 앉아 당신의 그림을 그리실 것 같네.
해가 뜰 때까지 섧게 그리다가 밭두렁에 걸려 있는 생을 잊으려고 이전의 생에서 열매 많은 곡식을 거두실 것 같네.
당신이 있던 곳에 엊그제도 폭우가 쏟아졌고 소나무 숲을 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이 스치며 능선에 이별을 고하네.
큰 가지가 꺾어져 시들어가는 나뭇가지에 잡새들이 이별을 전하네.
때로는 눈빛의 가시에 찔리고 말의 상처만 오롯이 남았네.
부족한 자식들은 어제와 이별하는 것만이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고 어제를 떠나보내는 것만이 내일을 온전히 맞이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네.
오늘도 날은 찌는데 무엇으로 가려야 하는지 몰라 묘비는 서 있는 것만으로 답하네.
간절하게 기도하면 무덤 속에 묻힌 사랑도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 같네. 뒷산에 어제 뜨던 해가 다시 뜰 것 같네.
애절하게 기도하면 지난 세월이 다시 올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봄도 다시 올 것 같네.
바람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 노골적으로 가슴을 아리고 나면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네.
이 바람이 또 얼마나 속을 흔들고 갈지 몰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두렵네.
밀려드는 그리움과 땀방울이 눈물로 그려지는 이 여름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모르겠네.
어제는 이 묘비 위에 새가 날아와 밤새 울었나 보네. 그렇게 눈시울을 적셔 하늘이 부연지네.
어설픈 기도소리 듣고 울며 피는 꽃이 무덤에 돋아나고 나비도 제 몸 흔들며 주위를 날아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