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선비의 육아 일기를 읽다

명명가 2012. 9. 3. 00:41

요즈음 손자와 생활하다 보니 지나가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몇 살이냐는 둥, 어떤 어린이 집에 보내느냐는 둥 쓸데없는 것을 묻기도 한다. 그러던 중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라는 책의 제목에 관심이 가서 구입하여 읽었다.
  김찬웅이 지은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라는 책은 조선시대 이문건의 ‘양아록’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 놓았다.
  양아록은 16세기 조선 중기 사대부인 묵재 이문건(1494-1567)이 손자인 이수봉을 무려 14년에 걸쳐서 성장 발달해 나가는 모습을 기록한 육아일기이다.
  이문건은 조선 중기 중종 때부터 명종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로, 승정원 좌부승지를 지니기도 한 사대부의 한 사람이었다.
  이문건은 조광조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절을 잘못 만나 조카는 효수를 당하고(을사사화) 그 자신은 귀양을 가는 처지에 이르렀다.
  조선의 선비 이문건이 쓴 ‘양아록’은 부모도 아닌 할아버지가 약 500년 전에 육아일기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고 큰 의미가 있다.
  책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애정과 엄한 교육 방법, 여종의 아이 젖 주기,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천연두, 단오의 그네놀이, 아이들의 음주 문화 등은 조선시대 생활사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을사사화로 귀양살이를 하게 된 이문건이 유배지에서 손자의 출생과 손자를 기르면서 체험한 일들을 시와 산문, 한문학의 일반형식을 빌어 일기 방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양아록’은 조선시대 역사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지니고 있는 책이다.
  귀양살이 하는 이문건이 할 일이 없어 양아록을 기술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장애인인 아들이 자식을 얻은 것이 매우 기쁘고 귀하게 얻은 손자의 양육을 위해 이 책을 기록하였다.
  이문건은 하나 밖에 없던 아들 온이 7세에 열병을 앓아 바보가 되었고, 딸은 간질병으로 죽고 그 외의 아이들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이문건이 아들에게 화를 내고 매를 대는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자식을 잃고 하나 남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바보 아들 온이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았는데 ‘양아록’의 주인공인 수봉이다. 손녀딸만 내리 낳다가 얻은 귀한 손자였으므로 이문건의 기대와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유배의 길에 있었고, 자식 복이 없었던 이문건에게 희망의 빛이 찾아 들었다. 아들 온이 고대하던 손자를 낳은 것이다. 58세에 본 2대 독자 손자였다.
  이문건의 모든 관심은 손자에게 향했다. 아이가 일어서고, 이가 나고 걷기 시작하는 모습,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문건은 손자의 이 모든 행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을 기록한 것은 할 일도 없고, 노년에 귀양살이를 하니 벗할 동료도 적고, 아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고독하고, 오직 손자 아이 노는 것을 보며 아이가 장성하여 이 글을 보게 되면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선비가 육아일기를 쓰는 것이 크게 흠이 되지 않았던 조선전기의 사회분위기가 ‘양아록’을 쓸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손자가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잘라 싸매서 다음날 깨끗이 씻게 한 뒤 황색 사기 항아리에 담아 며칠 후 조선의 왕들이 그 태를 많이 묻었다고 하는 신석산 서쪽 마을 태봉 아래에 파묻도록 했다. 여종 돌금에게 손자를 보살피도록 하였고, 손자의 앞날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개명하였다.
  언제 아랫니가 났는지, 언제 처음 일어섰는지도 꼼꼼하게 기록된 점이 놀랍다.
  9개월이 지나자 윗니가 생겼고, 11개월 때 처음 일어서는 모습에 대해서는 두 손으로 다른 물건을 잡고 양발로 쪼그리고 앉았다. 한 달을 이렇게 하더니 점점 스스로 오금을 펴고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처음 1년 동안의 기록이 가장 많다. 돌잔치는 그 아이가 살아남았음을 기뻐해 치르는 잔치라고 했다.
  이 무렵 아이는 할아버지가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의 흉내를 냈다. 이문건은 ‘손자 아이가 커 가는 것을 보니 내가 늙어가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면서 손자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러나 위기도 있었다. 5세 때에는 숫돌을 가지고 놀다가 엄지손가락 손톱 가운데를 찍어서 할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손자가 6세 되던 해가 이문건과 손자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손자가 전염병에 걸려 아파할 때 죽을 먹이고, 똥 누이는 일도 일일이 할아버지가 해달라고 졸라댔다. 기쁜 마음에 꺼리지 않고 돌보아주니 즐거워하고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밖에 나갔을 때 날이 저물면 곧 슬퍼하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 졸려도 자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늦게 돌아온다고 원망한다. 집에 들어오면 문 앞에서 기쁘게 맞이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마음에 있는 말을 한다. 이것이 진정 더불어 사는 것이고 한 뿌리에서 나온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이문건은 최후까지 이러한 관계를 원하였던 같다. 수봉은 여섯 살까지 이질, 학질, 안질, 더위 먹음, 천연두 등의 병으로 고생하고 몸은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그러나 사대부 가문의 아이로 태어나서 학문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여섯 살 손자에게 천연두가 찾아들자 이틀 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손자를 간호했다고 기록했다. 아들과 딸을 천연두로 잃은 경험은 이문건을 노심초사하게 했다. 열이 불덩이 같고 종기는 잔뜩 곪았는데, 몸 전체가 모두 그러하였다. 눕혀 놓아도 고통스러워하고 안아도 역시 아파했다. 아프다고 호소를 해도 구할 방법이 없다. 이틀 밤낮을 틈틈이 미음을 먹이고 어루만져 주며 답답함을 위로해 주었다는 기록에는 이문건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시대 천연두는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천연두를 겨우 극복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마 자국이 남아 힘겨운 사투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수봉은 6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손자가 7세 되던 해에 아들 온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손자 수봉을 돌보고 가르치는 것은 온전히 이문건의 몫이 되었다. 수봉은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가 학문을 익히지 않아 앞에 앉게 하고 꾸짖었다.
잠시 후에 나가 아이들과 동문 밖에서 어울렸다. 여종을 보내 불러들이게 했다. 뒤쪽 사립문 밖에 와서 끌어당겨도 들어오지 않아 성난 목소리로 불렀다. 한참 뒤 불손함에 화가 나서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올 때 그 머리통을 다섯 번 손으로 때렸다. 들어와 창가에 서게 하고 손바닥으로 그 볼기를 네 번 때렸다. 엎드려 우니 곧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때리고 난 후의 이문건의 심정은 애통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것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후회도 한다.
  10세 되던 해에는 그네 놀이에 정신이 팔린 손자에게 종아리를 쳤다.
13세부터 손자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만취해서 돌아오던 날 이문건은 가족이 모두 손자를 때리게 했다. 누이와 할머니가 열 대씩 때리게 했고, 자신은 스무 대도 넘게 매를 때렸다. 하지만 손자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손자가 14세 되던 새해 첫날 이문건은 ‘늙은이가 아들 없이 손자를 의지하는데 손자가 지나치게 술을 탐하여 번번이 심하게 토하면서 뉘우칠 줄을 모른다. 운수가 사납고 운명이 박하니 그 한을 어떻게 감당할까?’라며 손자의 음주벽에 마음 아파하였다. 이후에도 할아버지와 손자의 갈등은 커졌다.
  이문건은 손자에게 자주 매를 대는 자신에 대해 ‘늙은이의 포악함은 진실로 경계해야 할 듯하다.’고 반성을 하면서도,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른다.’면서 손자에 대한 야속함과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였다.
  ‘노옹조노탄’을 끝으로 이문건은 더 이상 ‘양아록’을 쓰지 않았다. 손자가 이제 장성하여, 더 이상 자신의 품속에 품을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양아록이 16세까지만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는 아동기를 16세까지로 본 것 같다.
  이수봉은 결국 할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과거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당해서 의병으로 활동하여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수봉의 나이 43세에 죽었으므로 긴 삶은 아니다.
오늘날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이 참된 가정교육인지, 무엇이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지켜야 할 원칙인지 이문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 메시지를 전한다.
아이를 믿고 지극한 사랑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하게 하는 방법인 것 같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 이문건의 양육 방법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손자의 맑은 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이문건처럼 내 손자에게 그의 삶에 대한 글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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