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은 잠시 스쳤을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다. 가는 세월이 있는가 하면 오는 세월도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오고 가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인생도 그렇게 오고 간다.
아파트 창 넘어 지나가는 차 소리가 멀어지더니 세월까지 함께 따라 흘러간다. 다가오는 세월이 외로운 줄다리기를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곳에는 내일이라는 끝없는 세월이 있다.
지난날의 노래 중에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라는 곡이 있었다.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잡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가는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내 청춘이 그렇게 빨리 지났다는 것을 실감하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요즈음에는 세월 가는 소리만 자주 들린다. 지금의 나이가 되기까지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저 찰나일 뿐이었다.
여생은 마냥 즐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세파에 흔들릴 뿐이다. 60이 넘은 어느 작가는 ‘기차 레일에 덜컹거리며 실려 가듯 세월이 가는 소리가 그렇게 들리더라고’ 했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어려움을 덜어주는 세월도 있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인생을 더 힘들게 하는 야속한 세월도 있다. 그러나 그 세월은 인생의 꽃이 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 古來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수명이 칠십을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날에는 80세면 호상이라 하여 동네 사람들은 물론 가까운 식구들도 그렇게 섧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데 인간 수명이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좋아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80세 전에 건강하게 살다 죽기를 바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지나치지 않게 살다 저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인생길은 혼자 늙어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 그리운 호수를 하나씩 만들어 놓고, 그 호수를 들여다보며 지난 세월을 비춰보는 것이 그리움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너희들도 늙어봐라.’하는 말을 자주하셨다. 그 말 속에는 그들의 외로움과 늙어가는 서러움이 담겨 있다.
‘무엇을 더 바라며 살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주지 말고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은 세월에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어느 누가 남은 세월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하루를 살며 나누는 대화가 더 순해질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들을 가끔 해 본다. 그러다가 작은 기도가 세월을 감싸주면 진정한 세월이 보인다.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 속에 세월이 있다.
여름이 지났는데도 늦은 더위가 한창이다. 여름 내내 내리던 비가 미안했는지 햇볕을 내려 곡식을 익게 하고, 주말농장의 채소를 자라게 한다. 늦은 무더위로 인한 정전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 또한 가는 세월이다.
가는 세월이 아쉬워 세월을 돌아보라고 ‘정전’이라는 경적을 울린다. 인생도 정전이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가는 세월에 가을이 익어간다. 가을이 여무니 또 다른 겨울이 고개를 내민다.
(2011.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