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밭 일기
산밭에는 작은 세상이 있고, 그 곳에 몰입하면 색다른 삶이 된다.
* 2013년 3년차 초보농부가 되었다.
3월 10일 : 작년 농사에 사용하고 방치한 폐비닐을 수거하여 큰 비닐 봉투에 넣어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였다.
3월 11일 : 밭두둑을 덮어 풀을 제압할 농사용 검정 비닐을 1만 4천원, 쇠스랑을 6천원에 샀다. 밭고랑과 두둑을 만들고 위에 퇴비를 넣고 비료를 뿌리고 새 비닐을 씌웠다. 할 일이 쌓여 있다.
3월 22일 : 밭 흙을 골라 두둑을 만들고 밑거름과 살균제와 비료를 뿌렸다. 기온이 떨어질 때를 대비하고, 싹이 잘 나도록 보호하며 새들이 먹는 일을 예방하기 위하여 20cm 깊이로 흙을 파고, 비닐 멀칭을 만들고, 상추, 열무, 아욱, 파, 들깨 등 씨앗을 뿌렸다.
3월 23일 : 도라지와 더덕 씨를 뿌렸다. 쉬는 시간에 커피와 물을 마시면 새참의 진미가 돋아난다. 밭 전체를 한 번 돌며 작업 결과를 보면 농부의 순수한 마음이 따라온다.
3월 31일 : 비닐 멀칭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운다. 파를 수확하고 시금치를 뜯었다. 마늘이 크는 모습이 푸름을 준다. 온 밭이 비닐로 덮여졌고, 호박 심을 구덩이 4곳을 마련하였다. 씨감자 잘라 2두둑에 조금 깊게 심었다.
4월 1일 : 밭 주변에 매실나무 11그루를 심고, 오미자 30그루를 밭에 심었다. 매실나무는 1그루에 4000원씩, 오미자는 1000원씩 주었다. 구덩이를 파고 밑거름을 주고 묘목을 심은 다음 잘 밟아주고 물을 주었다.
4월 5일 : 옥수수 씨를 정성들여 파종하였다. 부추를 작년보다 면적을 넓혀 심었다. 구청에서 수거한 플랜카드를 구하여 밭 주변의 풀이 많이 나는 두둑을 덮었다. 바람에 날라 가지 않도록 돌이나 흙으로 고정시켰다. 밭농사는 풀과 싸우는 일이다. 풀을 뽑고 비가 한 번 오면 다음 날은 어김없이 소복이 풀이 난다.
4월 18일 : 바람에 비닐이 날려 다시 손을 봤다. 옥수수와 감자가 싹이 수줍게 올라오고, 오미자 새순도 힘차게 나온다. 그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기특하고도 하다. 비닐 멀칭에 뿌렸던 씨앗이 자라 연초록을 그린다. 비닐을 거뒀다. 상추, 무, 얼간이 배추, 대파, 들깨 등이 가지런히 자란다. 밭에 올라가는 길에 재활용 플랜카드로 덮어 풀이 나지 않도록 단장했다. 결혼예식장 신부 입장하는 길처럼 양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4월 19일 : 유성 5일장에 들러 호박 모종 8포기를 사서 호박 구덩이에 심고, 씨 더덕은 밭의 맨 앞줄에 심은 다음 물을 주었다. 씨 더덕은 3∼5cm 크기로 100개 정도 되고 1만원에 구입했다. 더덕 향이 아주 진하다.
4월 20일 : 모든 곡물이 잠을 깨고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이다. 그래서인지 어제 밤에 적은 비로 땅을 적셨다. 심어놓은 매실나무, 오미자, 밭작물에 도움이 된다.
4월 24일 : 금년에는 일기가 좋지 않아 농작물 이식 시기가 늦어졌다. 토마토 30포기, 오이 30포기, 고추 30포기, 가지 10포기를 4만 7천원에 구입하여 이식했다.
4월 26일 : 옥수수를 심었는데 발아가 안 된 곳이 있어 2차로 파종하고 덩굴강낭콩과 녹두를 파종하였다. 거세미(굼벵이) 약을 파종 직전에 뿌려 예방하였다. 옥수수에 많이 발생하는 병해로 검은 줄 오갈병(흑조 위축병), 깨 씨 무늬병(호마 엽고병), 깜부기병(흑수병) 등이 있으며, 충해는 조명나방, 멸강충, 거세미 등이 있다.
5월 4일 : 1m 간격으로 수박을 심고 물을 주었다. 수박농사의 즐거움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수박열매를 보는 재미이다.
5원 12일 : 바람이 심하게 불어 심어놓은 작물이 넘어지고 흔들려 토마토, 오이, 고추에 지주를 세우고 고정시켰다. 옥수수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상추를 한 다발 안고 왔다. 올봄 늦추위로 작년보다 철이 10일 정도 늦다. 참깨를 파종하는 방법은 연구가 필요했다. 먼저 밭두둑의 비닐에 구멍을 낸 다음 깊지 않도록 흙으로 메우고, 그 위에 참깨 씨를 뿌리고, 다른 흙으로 얇게 덮어준다. 참께 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참깨 씨를 뿌리는 방법은 작은 음료수 빈병을 준비하고, 빈병 뚜껑에 구멍을 내고, 병 속에 참깨 씨를 넣어 거꾸로 들면서 뿌리면 1회에 3개씩 떨어진다. 구멍의 크기는 씨앗의 3배로 하였다. 참깨가 발아하는 조건은 낮 기온이 25°c 이상으로 3일 정도 계속 되어야 하고, 땅의 습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5월 17일 : 더덕이 푸른 줄기를 늘리고 있다. 잎을 따면 향이 진하다. 토마토와 오이 줄기를 바람에 상하지 않도록 묶어주었다. 밭 전체에 파종한 씨들이 푸름을 자랑하면 보고 또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5월 22일 : 오이와 덩굴강낭콩과 완두콩의 지주를 세웠다. 지주는 50개에 2만 2천원, 비닐 끈은 6천원에 구입하였다. 비닐 끈 사용 방법을 연구하였다. 농사 격언에 ‘손님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선조들이 기우제를 지낸 마음을 알 것 같다. 종묘상에 들러 분무기(4만원)와 살균제(1만 3천원)를 구입하였다. 밭 가운데에 마스크를 쓰고 분무기를 짊어진 내 모습이 틀림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5월 30일 : 참깨가 더위 속에서 소담스럽게 생명의 싹을 틔웠다. 여기저기 3개∼5개씩 나온다. 오이꽃이 노란색을 자랑한다. 옥수수는 튼튼한 몸통을 만들고, 수박과 참외는 가지를 늘리느라 정신이 없다. 산밭은 무더위로 성장통(成長痛)을 앓고 있다.
5월 31일 : 수박이 많이 자라 수박 순 자르기를 했다. 수박은 아들 덩굴에서 열매가 열린다. 어미 덩굴의 순을 잘라주어 아들덩굴이 자라게 순을 자른다. 불필요한 손자 덩굴은 제거하고 16∼18마디 사이에서 2개의 열매를 맺게 할 계획이다.
직파한 참깨 싹이 4∼5개씩 나왔다. 싹이 나온 지 1주일 정도 되어 본 잎이 2매∼3매 되었다. 한 곳에 2개씩만 남기고 솎아주었다. 옥수수가 힘차게 자란다. 곁가지가 여러 개 나왔다. 옥수수 키가 무릎 정도 되어 곁가지를 제거하였다. 이틀 전에 가위로 곁가지를 제거했는데 다시 자라고 있어 손으로 곁가지 싹을 제거해주었다.
6월 1일 : 옥수수가 서 있는 곳에서 10cm 정도 떨어진 곳에 소량의 복합비료를 주었다. 오이를 수확하였다. 대파를 옮겨 심었다. 중간에 솎아먹으려고 밀식했다. 물을 주었다.
6월 5일 : 옥수수, 토마토, 고추에 추비하였다. 수박이 꽃을 맺기 시작한다. 7월 10일경에 수확할 것 같다. 쪽파를 수확하여 볕에 말린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파뿌리를 자세히 보니 하얗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그런지 병충해가 극성을 부린다. 고추에는 응애가 심하고, 오이와 감자에는 진딧물이 많다. 농약을 쓰지 않고는 수확할 수 없는 지경이다. 고추에 살균제를 뿌렸다. 분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작은 농작물 위에 뿌려지는 소리가 시원하다. 상추, 오이, 깻잎 등을 따다가 앞집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재미가 있다.
6월 7일 : 마늘을 절반만 수확하였다. 일찍 수확한 마늘로 마늘장아찌를 만들었다. 마늘을 수확한 자리에 거름흙을 넣고 평평하게 만든 다음, 물을 충분히 주고 더덕 씨가 조금 덮일 만큼 고운 흙을 뿌렸다. 더운 날씨로 더덕 씨가 싹이 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풀을 베어다 덮어주었다.
6월 13일 : 옥수수 키가 어른 키보다 크다. 수박은 2개가 열렸다. 두고 보기에도 아깝다. 참깨는 온 밭을 푸른색으로 덮는다. 마늘을 수확하여 밭둑에 건조시키고 있다. 상추를 한 가방 땄다. 상추 잎을 꺾을 때 나오는 흰 즙이 락투신 성분인데 해독작용을 한다. 상추에는 비타민 A와 B, 철분과 칼슘, 히토신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섬유소가 많아 장운동에 효과적이다.
6월 15일 : 들깨 씨를 뿌렸더니 비둘기 등 새가 와서 먹어치운다. 다시 씨를 뿌리고, 풀을 덮고, 벽돌과 각목으로 땅과 사이를 뜨게 한 다음 그물로 덮었다. 새들이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6월 19일 : 일찍 심은 옥수수가 꽃을 내민다. 작년에도 가장 각광을 받은 작물로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이다. 옥수수수염이 나오고 30일 정도 지나면 수확할 수 있으니 7월 20일 정도면 수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종 시기와 종자를 다르게 했으니 수확시기도 다르게 할 수 있어서 좋다. 대파를 2차로 이식했다. 호박도 꽃을 피운다. 비온 후에 모든 농작물이 싱싱해졌다.
6월 22일 : 동생하고 함께 밭에 나가 감자를 수확했다. 수확한 감자는 여러 집으로 시집을 가 직접 자란 맛을 보인다. 가지, 상추, 오이, 고추, 깻잎 등 한보따리씩 가지고 왔다. 앞집 벨을 누르니 사람이 없어 상추 한 봉투를 현관문에 걸어 주었다.
6월 27일 : 참깨가 무성하고 진딧물도 없다. 가뭄을 이기고 자라는 모습이 대견하다. 참깨의 키가 1m 이상 자랐다. 도복을 예방하기 위하여 지주를 세우고 비닐 끈으로 안전하게 묶어주었다. 벌과 나비와 메뚜기의 뛰는 모습을 지켜보면 세상사가 보인다. 각종 농산물을 한 아름 안고 올 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이 묻어온다. 일기예보에 관심이 많아졌다.
참깨의 병충해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참깨 수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병충해로는 생육초기에 발병하는 입고병과 고온다습할 때 발생하는 돌림병, 시들음병 및 생육후기에 발생하는 잎마름병이 있다.
7월 1일 : 산밭에 들어서니 산비둘기가 기겁을 하고 산 속으로 도망친다. 이들은 내가 없으면 자기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작년에는 불청객인 두더지가 밭에 가끔 오더니 올해는 흔적이 없다. 두더지가 싫어하는 생선이며 기름 냄새 나는 것을 여기저기 묻어두어서 그런가 싶다. 늦게 심은 옥수수가 이제야 꽃을 피운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다. 참깨 순지르기도 하고 강풍에 넘어지지 않도록 줄로 옥수수를 묶어주었다. 지금 꽃이 피는 옥수수는 8월 1일 이후에나 수확할 수 있다. 상추, 고추, 깻잎, 호박, 가지, 토마토를 수확하여 쌀자루에 가득 담아 왔다. 오이도 한 자루, 가지도 한 자루, 고추도 한 보따리를 수확하여 여러 집에 나누어 주었다. 주는 기쁨이 많아 나누는 정을 배운다.
달팽이가 상추나 무, 배추를 먹고 산다. 상추 뒤에 숨어 살던 달팽이가 발견되어 손자에게 기르라고 작은 그릇에 넣고 비닐로 덮은 다음 공기구멍을 만들고 상추를 넣어주었다. 생각보다 잘 자란다. 가끔 보면서 좋아한다.
7월 8일 : 가지와 토마토, 풋고추가 많이 열려 한 자루씩 땄다. 호박도 무성하고 힘차게 줄기를 뻗어 나가며 열매를 맺는다. 봄에 심은 매실나무와 오미자나무가 자리를 잡고 자란다. 밭 가운데에 누가 와서 모래목욕을 하고 놀다간 흔적이 남아 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꿩이란 놈이다. 꿩 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반갑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다. 다시 오지 말라고 지주를 세우고 비닐 봉투를 매달아 놓았다. 의심이 많은 짐승이라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7월 12일 : 밭에만 오면 수박을 언제 딸지 만져보고 두들겨 본다. 드디어 수박을 따서 시식하였다. 가장 먼저 열린 놈을 땄다. 품질이 대형마트에서 사는 것과 같다. 밭 구석의 그늘에 앉아 반을 잘랐다. 빨간 수박속이 너무 좋다. 휴식 시간마다 먹고도 남아 반은 집으로 가지고 왔다. 풋고추와 토마토가 작황이 좋아 한 가방씩 땄다.
7월 16일 : 옥수수가 익었는지 조금만 벗겨보았다. 일찍 심은 옥수수의 꽃 수술이 시들고 꽃이 핀지 25일이 지났다. 일부는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1차로 20개 정도 크고 잘 여문 것만 골라 땄다. 껍질을 벗겨 놓은 옥수수 무더기가 너무 보기 좋다. 옥수수의 하얀 이가 탐스럽다. 참깨 꽃이 하얗고 그 틈을 벌들이 오간다. 밭 둘레를 온통 옥수수가 자라 울타리처럼 즐비하다. 날씨가 더워 일찍 맺은 참깨가 잘 여문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들깨 모종을 하였다. 들깨 모종이 웃자라 볼품이 없다. 밭을 파보면 온통 거름흙이다. 여러 차례 퇴비를 준 덕인 것 같다. 미생물도 많이 산다. 중부지방에는 물난리로 피해가 심한데 대전지방은 다행이 비피해가 없다. 농사는 자연이 도와주어야 거둘 수 있다.
7월 21일 :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4촌 동생 내외와 함께 밭에 갔다. 들깨 잎을 따고 들깨를 통째로 잘라내고 수박도 마지막으로 수확한 다음 정리하였다. 새로운 들깨 모종을 옮겨 심었다. 웃자란 들깨 모종을 땅속에 구부려 심었다. 들깨는 더위에 강하여 물도 주지 않고 대강 심어도 잘 산다. 옥수수, 들깨, 수박 줄기 등을 모아 퇴비장에 쌓았다. 퇴비장이 점점 커진다.
7월 31일 : 산밭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씨앗이 자라 열매가 되는 것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옥수수를 여러 번 수확하여 여러 집에 나누어 주기도 하고 냉동고에 보관하였다. 겨우내 먹을 수 있다. 생으로 보관하기도 하고 삶은 다음에 식혀서 보관하기도 하였다. 종자로 사용할 것은 껍질을 일부 남겨 베란다 구석에 매달고 옥수수차를 만들 것은 못생긴 것만 말렸다.
8월 3일 : 장마로 3일 만에 밭에 갔다. 참깨 아랫부분의 열매가 갈색으로 변해 알이 쏟아지고 있다. 내일도 비 소식이 있다. 서둘러 수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윗부분의 열매가 푸릇푸릇한 것도 있지만 오전과 오후에 참깨를 베었다. 밭 한구석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지주를 세워 고정시키고 참깨 다발을 교차하여 가지런하게 세웠다. 태풍이 불어도 피해가 없도록 참깨 윗부분을 비닐로 씌우고 묶은 다음 그물로 덮었다. 오후 늦게 비가 온다. 몸은 피곤하지만 오늘 흘린 땀이 보람이 된다.
8월 8일 : 참깨 다발을 세워놓은 곳에 가보니 그물로 덮은 무더기 맨 위에 비둘기가 올라와 죽어 있다. 깨를 주워 먹으려고 들어갔다 나오지 못하고 위로 올라만 가다가 죽은 것이다. 새대가리라는 말의 어원이 맞는 것 같다. 참깨 묶음을 옮겨와 나무 그늘에 방석을 깔고 막대기로 턴다. 잡티를 날려 보내고 알갱이만 골랐다. 1차로 수확한 양이 1말 정도 되었다.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비둘기가 상주하여 먹고 있다. 나눔이 미덕이라지만 요놈은 종 심하다. 날씨가 더워 작업을 서둘렀다. 참깨를 턴 다음 참깨 다발을 다시 교차하여 세우고, 비닐과 그물로 윗부분만 덮어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였다. 20그루 정도를 심은 일반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더니 빨갛게 익어간다. 익은 고추를 따다 베란다에서 말린다. 너무 화려하다. 모두 수확하면 우리가 먹을 양은 될 것 같다. 농부들이 고추농사를 선호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다. 수익성이 있는 작물로 생각되지만 한더위 땡볕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8월 10일 : 가을이 오길 기다린다. 연일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침 일찍 1시간 30분 정도 작업을 하였다. 철 이른 배추씨를 1차로 파종하였다. 속옷이 흠뻑 젖었다. 즐거운 운동이다. 시기가 조금 이르다고 하지만 어린 배추를 추석 전후에 미리 먹으려고 일찍 파종하였다. 씨앗의 크기가 너무 작아 한 곳에 여러 개가 들어가기도 했다.
8월 16일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아내와 함께 2차로 참깨를 수확하였다. 지난번에 세워둔 참깨 묶음을 그늘로 옮겨 털었다. 아주 잘 마른 참깨가 우수수 떨어진다. 이제 잡티는 가려내고 알곡만 남겨야 한다. 바람이 일을 할 차례다. 주변의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들이 합창을 하면 바람이 분다. 그때를 기다렸다가 잡티를 날려 보낸다. 원시적인 놀이처럼 재미있다. 한참을 반복하여 하얀 참깨가 남는다. 천으로 만든 가방에 깨끗한 참깨만 골라 담는다. 7kg 정도 되었다. 아내는 농작물 중에 참깨를 제일 좋아한다.
8월 24일 : 올 해는 불볕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린다. 김장 채소를 가꾸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 배추 모종을 심기 전에 토양 소독제와 살충제를 뿌렸다. 김장 배추 모종을 2판에 2만원을 주고 250포기를 구입하여 심었다. 모종판 하나에 128개의 모종이 있다. 밑에서 볼록한 부분을 약간 밀어주고 위에서 모종을 잡아당기면 온전하게 뽑힌다. 하얀 뿌리가 고스란히 엉켜 있다. 이 뿌리가 튼튼하면 이식에 도움이 된다. 다 심은 다음에 물을 주었다.
8월 25일 : 무씨를 파종하였다. 작년에 무씨를 파종할 때, 두둑을 만들지 않고 파종하였더니 무가 땅 위에서만 자랐다. 올해는 무가 땅속에서도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두둑을 크게 만들었다. 밭의 이곳저곳에 무성한 잡초를 뽑았더니 밭 얼굴이 깨끗해졌다. 밭에서 자란 풀을 뽑아 퇴비장에 쌓아놓으면 수북하던 것이 며칠 지나면 작아진다. 작아지면 또 쌓고, 또 쌓아놓으면 작아지고, 그런 과정이 거름을 만드는 과정이다.
8월 30일 :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부터 서늘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낮 기온도 30도를 넘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도 있다. 쪽파를 심었다. 씨앗용 파를 뿌리도 다듬고 싹이 잘 나도록 윗부분을 가위로 조금씩 자랐다. 그리고 작은 밭고랑을 만들고 줄이 지어 심었다. 5 가정이 김장할 수 있는 양을 심었다.
9월 5일 : 배추에 물을 주었다. 무가 예쁜 초록색 싹을 내민다. 쪽파가 싹이 나기 시작하는데 꿩이 심술을 부렸다. 여기저기에 심어놓은 쪽파를 뽑아 흩뜨려 던졌다. 그 놈 참 얄밉다. 여러 군데에 지주를 세우고 지주 중간 부분에 하얀 비닐을 묶어 놓았다. 꿩은 의심이 많아 접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꿩은 지금도 산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울어댄다.
9월 12일 : 비가 와서 4일 만에 밭에 갔다. 배추, 무, 쪽파가 많이 자랐다. 가뭄을 이기고 싱싱하게 자란 모습이 대견하다. 배추는 큰 잎을 벌리고 자란다. 쪽파는 솔잎을 세우듯 줄을 서서 자란다. 무는 가냘픈 잎을 늘어뜨린다. 밭이 다시 초록색의 물결을 만들었다. 갓을 파종하였다. 저녁에 선선 기운이 있어 호박이 열매 맺는 일에 충실하여 애호박 8개를 수확하여 가까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다들 좋아한다. 그들의 얼굴에 나눔의 맛이 있다.
9월 15일 : 날씨가 좋다. 김장 채소가 활기차다. 메뚜기가 배추와 무의 어린잎을 갉아먹는다. 작은 달팽이도 잎 뒤에 붙어 잎을 먹고 있다. 배추와 무에는 배추벌레, 메뚜기 등이 오지 못하도록 농약을 뿌리고, 달팽이를 유인하여 죽이는 약을 2m 간격으로 땅에 놓았다. 시금치 씨를 뿌렸다. 이놈들 중 일부는 겨울을 지나야 하는 놈도 있다. 가을밭이 초록빛으로 덮였다. 참깨 수확량의 절반 정도를 유성 시장에 있는 기름집으로 가지고 가서 기름을 짰다. 손님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소주병에 참깨 기름을 받아왔다. 이집 저집에 한 병씩 나누어 주었다.
9월 23일 : 김장용 배추, 무, 쪽파가 무성하게 자란다. 며칠 전에 파종한 돌산 갓, 시금치가 싹을 틔운다. 밭 구석에 늙은 호박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큰 호박을 따서 안고 집으로 가져왔다. 어찌나 큰지 혼자 앉고 들어오기가 힘들다. 응접실 문갑 오른쪽에 큰 쟁반을 받쳐 놓고 진열해 놓았다. 너무 커도 그런대로 균형이 잡혔다.
9월 26일 : 더덕 씨를 받아왔다. 더덕 꽃은 종처럼 예쁘고 씨는 방울처럼 매달렸다. 비닐 봉투에 씨를 모아 가져왔다. 더덕 씨는 발아시키는 방법도 기술이 필요하다. 봄에 씨앗을 물에 24시간 담갔다가 고운 흙에 뿌리고 덮어주어야 한다. 그래도 발아율이 40% 정도밖에 안 된다.
혼자 들기가 무거울 만큼 큰 늙은 호박을 수확하여 거실로 가져 왔다. TV 옆에 진열하였다. 참으로 운치 있는 정경이 만들어졌다.
10월 1일 : 들깨가 아주 잘 자라고 익어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줄기와 잎이 누렇게 변하고 일부분의 여문 꼬투리들이 갈색으로 변했다. 개화 후 30일 정도가 되었고 이슬이 촉촉이 내려 아침에 베니 아주 좋다. 밭에 천을 깔고 벤 들깨를 한 곳에 모아 놓았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긴 막대기로 눌러놓았다. 들깨향이 몸이 묻어난다.
10월 5일 : 들깨를 잘 마를 수 있도록 뒤집어 놓았다. 푸르던 잎이 갈색으로 변하며 말랐다. 배추와 무, 파는 날씨가 서늘해질수록 하루가 다르게 큰다.
10월 7일 : 월동할 마늘을 심었다. 넓은 두둑을 만들고, 땅을 평평하게 하고,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하얀 비닐을 씌우고, 나란하게 구멍을 뚫었다. 구멍마다 마늘 한 쪽씩 뿌리 부분이 아래로 가게 심었다. 그 위에 흙을 얇게 뿌려주었다. 비가 오면 싹이 날 것 같다. 들깨를 수확하였다. 참깨보다 운반하기가 쉽다. 밭 한 쪽 구석에 천을 깔고 두들겨 털었다. 1말 정도 수확하였다.
10월 10일 : 마늘을 심는 방법으로 넓은 두둑을 만들고 하얀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은 다음 양파를 심었다. 양파 모종은 유성시장에서 1판에 7천원을 주고 구입하여 심고 물을 주었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지 궁금하다.
10월 20일 : 마늘이 움이 트고, 양파가 자리를 잡았다. 초록색으로 솟아나는 마늘이 참으로 신기하다.
11월 4일 : 겨울과 내년 이른 봄에 먹을 무 50개를 수확하여 밭 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무 잎을 잘 역어서 밭 입구 나무 그늘에 걸어놓았다. 잘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 먹기 좋은 무청(시래기)이 된다.
11월 7일 : 배추, 쪽파, 무, 갓 등을 밭에서 잘 다듬어 집으로 가져와 김장을 했다. 아주 먹기 좋도록 잘 자란 것만 골랐다. 무와 배추 맛이 아주 좋다. 온 나라가 김장거리가 풍년이라고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지만 풍년이라서 좋다. 무 50개를 뽑아 밭 가운데에 묻었다.
11월 13일 : 오늘까지 6 가정에서 배추와 무를 가져갔다. 밭에 구덩이를 파고 상추를 심었더니 싱싱하게 잘 자란다. 위에 비닐을 씌워서 추위에 잘 견딘다. 검정콩이 서리를 맞아 잎이 시든다. 거둘 때가 된 것 같아 밭 모서리에 모아 놓았다.
11월 15일 : 지난번에 기름을 짜고 남은 참깨와 들깨 기름을 짜려고 유성에 있는 기름집으로 갔다. 기름집에는 시골 아낙네들로 붐빈다. 줄지어 앉아 기다리는 모습이 어릴 적 명절이 다가와 흰떡을 뽑는 집 풍경이다.
11월 20일 : 시금치, 마늘, 쪽파, 부추, 양파, 땅 굴속의 상추가 이 밭에서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나무 그늘에 매달아놓은 시래기가 잘 말랐다. 조심스럽게 거두어 집으로 가지고 왔다. 시래기 색깔이 변하지 않도록 아파트 베란다에 검정비닐을 씌워 걸어놓았다. 한겨울에 생선찌개를 만들 때 사용하기로 했다.
11월 24일 : 날씨가 스산해지고 낙엽이 지니 산밭의 풍경도 단순해졌다. 서리태 검정콩이 서리를 맞았다. 마른 콩 다발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두들기면 콩알이 나온다. 열심히 일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노라면 진정한 힐링을 느낄 수 있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작물이 서리태 검정콩이다. 파종한 면적은 조급인데 10kg 정도를 수확했다. 서리태는 속청이라고도 하며 속은 푸른색이고 겉은 검은색을 띈다.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 무기질이 다량 함유 되어 있고, 메시틴은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노화방지에 좋다. 그리고 고혈압과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의 작용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11월 26일 : 매실나무가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비닐과 스티로품을 이용하여 동여매었다. 농기구와 비료 등을 밭 입구 임시 창고에 보관하였다. 농한기에 접어들어 내년 봄을 기다린다.
12월 20일 : 날씨가 따뜻하여 오랜만에 밭에 갔다. 밭 가운데에 묻어둔 무와 배추를 캤다. 땅속에 나란히 숨어있는 무와 배추가 파란 싹을 내고 숨을 쉬고 있다. 추위를 견디고 있는 쪽파와 시금치를 먹을 만큼 속았다. 밭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다듬어 주고 퇴비장에 흙을 뿌려 거름이 잘 되도록 섞어놓았다.
산밭에서
‘하농은 풀을 가꾸고, 중농은 작물을 가꾸며, 상농은 흙을 가꾼다.’는 격언을 확인한다.
‘산밭은 자연의 섭리를 표현하는 작은 우주이고, 행복이 머무는 일터이다.’
‘참 삶으로 더디게 생활하며 이웃을 생각하는 곳이다.’
‘농작물과 소통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정화된 공기를 마시면, 농부가 일구는 자리가 그려진다.’
‘씨앗이 발아하면 절기를 앞서 가고, 생명을 말한다.’
‘부부가 함께 일 할 수 있는 여건과 건강과 취미가 있으면 복 받은 사람이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경험하는 것이 평범한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과 해충과 길짐승 날짐승이 함께 사는 땅에서 농약을 덜 사용하며 일반적인 기법으로 상품 가치가 있는 농산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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