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갖자니 쑥스럽고 안 하자니 서운했다.
끝 모르고 가는 인생길에 일흔 번째 모퉁이를 돌아선다. 가고 못 오는 지난날의 희미한 추억을 안고 오늘을 산다. 나이를 먹었어도 그것은 겉모습만 내주었을 뿐이다. 거울 속에서 황혼 뜰을 걸으면 지난날에 빠져 원인 모를 갈증을 느낀다. 꽃향기 가득 싣고 달려온 세월이 세상 풍파에 지쳐 이제 고목이 되었어도 서럽지 않다. 친인척들을 앞에서 내 남은 인생을 위한 황혼 연가를 확인하였다. 빠르게 흘러버린 세월이 원망스럽다.
사람들은 칠순을 고희라고 한다. 본래의 뜻은 두보가 지은 ‘곡강시’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에서 온 말로 70세까지 살기가 드문 일이라는 뜻이었으나 그 뜻이 바뀌어 70세 나이를 별칭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공자는 ‘나이 70이 되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고 하며 이를 종심이라 했다. 이 말처럼 나이 드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요즈음에는 환갑이 되면 부부가 해외여행을 가고 고희가 되면 집안 식구들끼리 식사를 한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칠순 잔치를 한다는 것은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삶의 태도와 행동을 확인해 보는 자리로 여겼다. 가족들 앞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 머물던 날에’라는 수필집을 편찬하여 친인척들에게 나누어 주고 음식점에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칠순 날이다. 약속 장소에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악수를 청했다.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마다 내 인생의 순간이 스쳐갔다. 인사말도 하고 생일 축하 케이크도 자르고 염치없게 선물도 받았다.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내 삶을 지켜봐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숨김없이 내 마음을 보여주었다. 따뜻한 축하를 받으며 앞으로의 삶을 그렸다.
인생이 무엇인지 더듬어본다. 그것은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부모형제와의 만남, 아내와의 만남, 자식들과 며느리 손자와의 만남, 직장과 사회에서의 만남 등 모든 만남이 인생이었다. 젊음을 보내고 오늘은 낯선 계절이다. 하루가 더 새롭고 기쁨과 서글픔이 교차한다. 하늘이 유독 맑고 환한 날이다. 하늘 위로 늙은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그 새가 향하는 곳은 알 수 없다. 파란 하늘 위에 까만 점 하나가 흔들거리고 있다. 빛이 너무 밝아 눈만 부신다.
내 나이가 한 살 높아졌고, 젊은 한 살과 이별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고 어제처럼 오늘을 산다. 인간이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벌이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출세한 사람이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100세까지 사는 것도 아니고 인명은 재천이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아흔 나이에 ‘삶은 계속되고 아직 꿈꿀 시간은 많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내 나이 칠순이 되었어도 나는 꿈이 아닌 후회가 되는 일들이 가끔 있다. 늙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꿈보다 후회가 있을 때 나타난다. 나는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삶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나만의 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준 종심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빨리 지나가도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 삶의 멋과 향기를 즐겼고 조급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슴 뛰는 일이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