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상실 시기

명명가 2018. 8. 23. 16:12

하던 일에서 손을 떼면 상실의 시간이 온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20대에 쓴 시 영망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잊어버려/ 천지에 이 한 몸은 고독하다./ 세상만이 나를 잊었겠나?/ 형제마저 나를 잊었다./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었으니/ 내일이면 내가 나를 잊을 차례다./ 그 뒤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까운 이도 먼 이도 완전히 없어지리./

이 시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다. 잊힌 자의 고독감에 괴로워하던 이규보가 도달한 것은 잊힌 것의 본질이었다. 망각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예외가 없고, 이제 나마저도 나를 잊어야 한다. 나는 아둔하여 이규보가 20대에 깨달은 이런 마음을 정년퇴직한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문화와 사회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지, 부족한 것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때가 되었다.

은퇴 인생은 상실시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비슷비슷하다. 지난세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재산을 남긴다는 신념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영원히 살 것처럼 재산을 모으지 말고 자신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 돈을 써야 한다. 최근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앞으로 자식들에 의존하지 말고, 사회에 봉사하고 인간다운 삶을 만들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하고, 범사에 불평하며 사는 사람은 괴로울 뿐이다. 인생 노년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직장을 잡기 전의 제자리로 돌아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많이 올라갔으면 많이 내려와야 한다. 홀로서기에 성공하면 은퇴했어도 은퇴한 적이 없는 사람이 된다.

 

프랑스 시인 볼테르는 인생은 정원과 같다고 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노년을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화과정을 인식하고 수용한다. 자신에 맞는 운동, 취미활동 등으로 마음을 다잡으면 자신감을 얻고, 감사와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노년에 꽃이 피고 복된 은퇴생활이 된다. 현대사회는 해고나 명퇴, 부도로 인한 실직 등으로 은퇴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일자리가 있어도 비정규직으로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이다. 운이 좋게 정규직으로 대기업에서 50대까지 버틴다고 해도 부족한 퇴직금으로 40년을 살아갈 수도 없고, 국민연금이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은퇴 인생은 늙을수록 돈이 절실해지고, 병들면 돈이 더 들어간다.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은퇴자 60%이상이 노후준비가 부족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삶에 영향을 준다. 노후에도 은퇴 전 소득의 70~80% 정도가 필요하다. 은퇴 인생에 매월 나올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노후가 편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후지타 다카노리는 그의 저서 '2020년 하류 노인이 온다.'에서 빈곤 노인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각하고, 일본에 비해 부족한 사회보장제도와 빠른 핵가족화로 한국노인들이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수입도 없고, 저축도 없으며 사고나 병이 생기면 생존 자체가 위험해진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버림받은 노인들이 140만 명에 육박한다.

독거노인들은 소득 불균형으로 빈부격차와 절대적 빈곤으로 고독하게 살아간다. 독거노인들이 겪는 고통은 가난에 시달리게 되는 빈고와,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병고와 고독으로 시달리는 고독고와 무료하게 보내야하는 무위고가 있다. 이 네 가지 고통 중에서 빈고가 가장 먼저 고통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201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수가 134만 명으로 급증했고, 2035년에는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독거노인 상당수는 가족과 거의 왕래도 없이 고립 상태에 있다. 이들은 혼자 쪽방에서 기약 없는 침묵으로 생을 이어가는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이들의 1612만 명은 가족과 만나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어도 바로 발견하지 못하고 며칠째 방치하는 고독사가 허다하다. 장례절차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체가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수년간 홀로 살아온 살림도구를 치우지도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죽음이다. 그들은 항상 외롭고, 집안에만 갇혀 살다보면 더 힘들고,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은 더 쓸쓸하다. 고독사는 단순히 누군가가 혼자서 죽은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고, 사회 전반의 이기주의가 나은 결과이며, 이제는 사회 문제가 되었다. 돈은 많이 버는 것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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