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기

명명가 2012. 9. 2. 01:39

노자는 탐욕이 재앙이라고 했지만 나는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부자를 비방하고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였더니 가난한 삶이 보였다.
가난이 두렵다고 재물을 탐하였더니 삶의 그림자가 보였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삶의 묘미는 사라진다고 '보왕삼매론'은 말하고 있다.
  아프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시집 한 권을 들고 살다간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가장 나쁜 삶은 가난한 삶이 아니라 노예의 삶이라고 했다.
  삶의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치게 되고, 잘난 체하고, 남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게 되고, 마음이 사치해진다고 한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카시아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있고, 벼랑 위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의 진달래 꽃 속을 통해서도 하루에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들에게는 부는 좋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재물과 관련이 적은 부자도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과 부를 구분하는 방식은 차원이 낮고 저급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좋은 것을 주면 더 좋은 것이 온다지만 준 적도 없는 것 같고 온 적도 없는 것 같다.
  나쁜 것을 퍼서 주면 나쁜 것만 쌓인다지만 그것도 아직 모르겠다.
  나를 비우면 그 비운만큼 채워준다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질까 두려워 아끼고 참았더니 벙어리가 된 듯하다.
  장기려 박사는 자기 재산이 하나도 없으면서 궁핍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세운 병원을 직접 소유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을 모두 자기의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죽어서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두지 않았지만, 병원이라는 집과 세상을 소유한 진정한 부자로 죽었다.
  재물 그 자체는 가난과 부자가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이 가난과 부자가 존재한다.
  나의 본성을 알고 더 맑게 만들어나가는 노력으로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면 좋겠지만 아직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아깝더라도 주는 연습을 하여야겠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행복이니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빈 그릇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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