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죽마고우가 떠나던 날

명명가 2012. 9. 2. 01:40

회상하는 것은 그것이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우리들의 일상적인 한 부분이다.
  우리들에게 시간은 자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간 속에는 희망도, 절망도, 눈물도, 기쁨도, 탄생도, 죽음도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젠가 구체적인 영혼과 구체적인 육체에 닿는다.
  나는 지금 하얀 배를 타고 먼저 간 친구를 회상해 본다.
  그는 지난 75년에 너무 젊은 나이로 이승의 삶을 마쳤다.
  가혹하고, 처절하고, 허전한 삶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와 같은 길을 함께 걸었고 직장생활도 교사라는 직업으로 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옛날 청소년기의 앨범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친구이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가졌던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작은 방에 앉아 눈을 모아 서로의 속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난히 활달한 그와 조금은 내성적인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성장하여 나는 서천에서 그는 연기군 금호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햇병아리 교사 생활을 할 때 예비군 교육장에서 만나면 그 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휴식 시간이 너무 짧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는 체육선생이었기 때문에 축구를 무척 좋아했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만족스럽기만 하다고 하면서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친구 기철이가 한 통의 전화를 남겼다.
  "야! 너 내일 대전에 갈 준비를 하고 판교로 와라."
  "왜"
  "글쎄, 광직이가 백혈병이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나의 절친한 친구.
  다음날 나는 고향 친구들과 함께 그를 찾아 대전의 성모병원으로 갔다.
  그가 중병에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조그마한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가 백혈병으로 인하여 삶의 끝에 거의 이르러 있다는 사실을 그의 부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결혼하여 2살 된 예쁜 딸아이가 있었다.
  너무도 혹독한 벌에 우리는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있었으나 기력이 쇠잔하여 와병중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말을 잊은 나에게 그는
  "내가 백과사전을 찾아봤더니 급성이면 대부분 죽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만성이면 20∼30년 정도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
  "내가 체육시간마다 학생들과 계속 축구하느라 함께 뛰었더니 과로가 발병의 원인이 되었나 보다."
  "이 병원에서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고 연기군에 있는 집으로 가는 도중 택시 안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눈물도 말랐다."
  "병이 좀 나아지면 고향의 흥림 저수지에 가서 낚시나 하고 살자"
  "그럼 빨리 완쾌되기만 해라"
  "우리 옛날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병원 앞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기철이 삼열이 한택이 등 우리들만 육계장을 먹었다.
  그 뒤 한 달이 못 가서 그 친구는 하얀 배를 타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우리들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유골을 산에 뿌려주고, 계원 자격이 상실되므로 쌀 4가마 값을 유족에게 주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 친구의 동생도 우리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잘 따랐고, 친구 아버지도 우리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친구가 떠나고 나니 눈을 돌렸다.
  우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1∼2년이 지난 뒤에 그 친구의 부인은 딸만을 남겨두고 신발을 바꿔 신었다고 하더니 그 가족들도 작은 아들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래도 태양은 어제와 똑같이 다시 뜨고 진다.
  하지만 나의 작은 앨범 속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황망해지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여 도망치듯 사진첩을 넘긴다.
  옛 친구의 사진을 보면 그 때의 말소리가 마구 엉키어 들려온다.
  친구여 부디 잘 있게.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냈으니 이제는 밤하늘보다 더 짙게 고요함을 거두게.
  잘 있게.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동휴양림의 가을   (0) 2012.09.02
착각과 여유  (0) 2012.09.02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기  (0) 2012.09.02
이솝우화의 교훈  (0) 2012.09.02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0) 201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