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꿈이 세월에 무너지고 느린 행보를 즐기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의 길은 처음 가는 길이기에 마주하는 것마다 낯설다. 빙빙 돌아가는 아련한 길을 젊을 때는 몰랐다. 몸과 마음과 감각도 서툴러 뒤돌아보니 그것이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발자국 따라 새겨진 이 길을 황혼이라고 한다.
어머님이 요원병원에 계실 때 그곳을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표정이 없었다. 그들은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가족들은 여기서 조금 더 있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직장 문제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간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맞벌이는 맞벌이하느라 바빠서, 전업주부도 이런저런 이유가 따로 있다. 서운한 얼굴만 남기고 눈물만 흘린다. 맞벌이하는 부부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화장실에 데려가고, 점심밥을 차려 주고, 기저귀를 갈아 줄 수가 없다. 그래도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줄 수 있으니 병원에 계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삶의 기준도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80대 노인은 배우자가 밥을 차려 주면 성공한 삶이고, 90대 노인은 전화할 곳이 있으면 성공한 삶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으면 사람들은 자존감에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세상은 아픔 속에서 다듬어지고 슬픔 속에서 지나간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아프면서 성장하고, 울면서 열매를 맺는다. 아픔 속에서도 꿈을 꾸고 상처 속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슬픔을 극복하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어떤 이는 가끔 외롭고, 어떤 이는 날마다 외롭다. 외로움은 일상의 한복판에 올 수도 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고 마음을 준 상대가 자신의 기대를 외면할 때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집착할 때 생긴고,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사별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겪게 되는 상실의 순간이 개인적이고 조용하게 잊혀야 하는 문제가 된다. 사별은 누구나 언젠가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고 평생을 돌봐야 하는 상처다. 사별의 아픔은 괜찮아진 것 같아도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기억과 그리움과 상실이 있다. 상실의 슬픔은 보통, 잃어버린 사람이나 대상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슬픔은 상실로 야기된 깊은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대상과 연결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변화하는 시간이다.
노년이 되어 병들고 외롭고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며 사는 노인들도 많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려면, 궁핍과 병고와 소외, 외로움의 시기가 노년이라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부담 없이 누리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년을 맞이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반백이 되어 있고, 몸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고,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던 아이들은 하나 둘 품을 떠나고, 오랜 세월을 함께하던 반려자와 친구들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노년을 확인한다. 자신의 노년은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럴 때가 되면 산이 좋은 사람은 산으로 가고, 바다가 좋으면 바다로 가 마음껏 즐기면 그만이다. 인생길에서 오늘은 어디쯤 왔을까, 이제 어디로 흘러갈까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 길이 당신의 노년을 의미한다. 자식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따로 있다. 도를 넘지 않는 적당한 관심과 기대가 당신의 노년을 행복하게 만든다. 자식이나 친인척들을 가까이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행복한 노년을 만드는 길이다.
환영하는 사람이 없어도 늙음은 찾아온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아주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이 늙음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늙음을 막을 수 없다. 사람은 늙고 주변 사람이 하나둘 떠난다. 노년이 되면 기력도 정신력도 의욕도 마음뿐이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은 상실과 외로움을 말한다. 누구나 황혼 열차를 타야 하는데 종착역은 모른다. 체념하고 절망하는 순간에 늙음이 시작된다. 노년기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다. 노년은 삶의 여백을 담을 수 있고, 사랑과 너그러움이 존재하고, 부족한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갖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나선다. 주어진 오늘에 감사할 수 있으며,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다.
노년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마음의 상처와 아픔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당사자가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용서해 줌으로써 치유해야 한다. 지난 세월이 쌓일수록 마음이 아련하거나 몸이 아프다. 남의 상처는 ‘별것도 아닌데 뭘 그런 일로 그럴까?’ 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 노년이 되면 가끔 상처와 아픔 그리고 본질적인 외로움을 겪는다. 가까운 친인척 간에도 뜻하지 않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아무도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인생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노년의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는 감정이다.
생각은 주로 과거에 머물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추억도 있을 수 있다. 기억은 몰락한 집안이나 갈 수 없는 고향이나 실패한 사업에 대한 경험에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는다. 기억에 나타나는 상처와 아픔은 사람마다 푸는 방법도 다르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섣부른 판단과 충동적인 감정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다. 누구는 술로, 누구는 게임으로, 누구는 취미생활로, 누구는 심리적 치료로 푼다. 사노라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할 길이 있고,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길도 있다.
노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할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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