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완전한 두 집이 있어야 죽지 않고 산다.
승패는 집 많은 자가 이긴다. 한 판의 바둑은 우리 인생처럼 우여곡절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인생보다 나은 점은 다시 둘 수 있다는 점이다.
바둑은 부동산 투자가가 되어야 하고 포로와 집을 교환하니 전투와 경계에 능한 지휘관도 되어야 한다.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는 썩는 줄 모른다.'
'바둑 삼매에 빠지면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알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바둑을 둘까? 바둑은 인생과 매우 흡사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번 가면 끝인 인생을 바둑에서 보고자 함이고 분수를 모르고 금전과 명예 등으로 인생을 그르침을 보고자함이다.
무리수를 자초함은 수양 부족이다.
다 죽었음에도 정신 모아 때를 기다리면 기회는 오고 기사회생한다.
호랑이도 토끼 한 마리 잡을 때 전력투구한다. 교만은 반드시 패한다는 당연한 이치이다.
이겼다 해서 기쁨에 젖어 있지 말고 승부는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이 바둑의 교훈이다.
바둑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머리를 가져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바둑을 두면 침착해지고 셈이 밝아진다. 1급은 때를 기다릴 줄 안다.
바둑을 두면서 그때 그 시절 바둑으로 함께 한 이들이 그립다.
바둑판을 짊어지고 교실 구석을 찾은 적도 있고 나무 그늘을 찾거나 원두막을 아니면 숙직실을 점거하던 그 사람들이 그립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린 묘수풀이를 하나하나 스크랩하던 일이 그립다.
어느 해, 목련꽃 피는 4월 장항으로 직장 대항 바둑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었다. 그 날은 바둑이 너무도 풀리지 않아 처절하게 승부가 끝난 적도 있었다.
기원을 나오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희망을 상실한 채 힘없이 돌아서는 상대의 뒷모습에서 비애를 보았다.
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말라는 충고를 잊었기 때문이리라. 상대방을 공격하고자 할 때는 먼저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잊었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약점은 없는지, 혹시 반격을 당할 소지는 없는지 등을 일단 잘 살펴 본 후에 공격을 하라는 가르침을 잊었었기 때문이리라.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속담을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리라.
삼국시대의 역사책에 바둑이야기가 적혀 있다.
신라 34대 임금 효성왕의 왕자시절 이야기이다. 왕자는 성품이 어질고 총명해 덕망과 학식 있는 문인 학자들과 사귀기를 좋아했는데 왕자와 가장 친근한 인사 중에 신충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신충은 바둑을 잘 두어서 왕자와 좋은 적수였다. 둘이서 대국을 시작하면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고 두 사람의 우정은 바둑을 통해서 더욱 돈독해졌다. 그들은 여름철, 날씨가 더울 때면 궁중 뜰 안에 있는 큰 잣나무 아래서 대국을 하며 때로는 시문을 논하고 세상이야기도 했는데 하루는 왕자가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다가 신충에게 이런 맹세를 했다.
"나는 그대와의 우정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만약 후일에라도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이 잣나무가 증언을 하리라."
이에 신충은 너무나 감격하여 절을 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효성왕은 왕위에 오르자 즉각 죄수들에게 대사면령을 내리고 법령을 고치고, 인사조처를 단행하는 등 새로운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태자시절에 가장 절친했던 바둑친구 신충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신충은 새 임금께서 즉위한 초기이므로 정무에 바빠서 총망 중에 나를 잊고 있을 뿐이다. 일각이 여삼추로 임금의 부름을 학수고대했으나 임금은 소식이 없었다.
신충은 임금의 신의 없음을 원망했고 원망하는 마음은 자꾸만 쌓여서 한이 되었다. 그는 예전에 효성왕이 왕자시절에 자기와 바둑을 두며 맹세했던 그 잣나무 밑에 찾아가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서 붙였다고 한다.
“무릇 저 잣나무 가을 아닌데 시들어지네 너를 어찌 잊으랴 하시던 말씀 우러러 뵈옵던 낯이 계시오나 달 그림자 비친 연못에 가는 물결 하소하는 듯 님의 얼굴 뵈올 건가 세상일 애처롭네”
잣나무에 신충의 한 맺힌 노래가사가 붙은 뒤부터 이상하게도 나무는 잎이 마르고 가지가 축 늘어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궁중 뜰을 산책하던 효성왕이 예전에 무성하던 잣나무가 갑자기 말라죽어 가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신충의 노래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효성왕은 그 때야 크게 깨닫고 옛날 바둑친구를 잊은 것을 후회하면서 신충을 불러서 높은 벼슬을 주니 말라 죽어가던 잣나무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이처럼 바둑의 인연은 세월을 띄어 넘는다.
근래에 와서 조남철 국수에서 조훈현으로 이창호에서 이세돌의 출현까지 참으로 많은 변화가 오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바둑계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것은 어린 학생들이 바둑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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