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난의 다리를 건너온 사람들

명명가 2012. 9. 3. 00:08

지난 일요일에 고향에 갔었다.
  종친회 일로 바삐 가야만 했었다.
  옛집에 들어서니 부모님들은 사랑채에서 군불을 지피시는데 열중이셨다. 큰아들이 온다고 사골을 몇 시간 동안 끓이고 계신 것이었다.
  가난을 건너온 늙으신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하여 하실 일이 이것말고 더 없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향의 뒷산에 얼어붙은 산골짜기에도 봄의 입김이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응달과 골짜기에는 아직도 스산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햇살과 바람결은 한결 부드러웠다. 안채의 보일러실을 들여다보니 기름보일러에서 기름과 장작을 겸하여 사용할 수 있는 보일러로 개조하였고, 옆에는 장작이 늘비하게 쌓여 있었다.
  그 옛날 아궁이에 군불 땔 때를 연상케 하였다.  
  기름과 장작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보일러로 고치니 고유가 시대에 기름 값에 쫓기던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하셨다.
  옆에 서서 지난 세월의 장작 타는 냄새에 옛 정취를 다시 느껴 봤다.
  가진 것이 많아져 편리해졌고, 그래도 아직까지 전통적인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정과 풍습이 남아있는 곳, 일자리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곳, 농사일만 하면서 살아도 불만이 없는 산동네이다.
  동네 앞을 기차가 지나가 심심하지 않은 곳, 하루살이에 문화의 혜택을 그런 대로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보릿고개를 넘어 새마을 운동을 전개한 적도 있었다.
한 집 두 집 서울로 따나갔지만 남은 자들은 경지정리 작업을 하고, 공동 수도, 시내 버스 승강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빈 창고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덜 갖고도 행복했었다.
  객지에 나간 자식들이 자리를 잡을 때마다 자랑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이들은 작고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고,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동분서주하는 도시인들과는 너무나 많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었다.
                                                 2000. 3. 19(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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