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切唯心造
파스칼은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다. 어찌 그림자 굽은 것을 한탄할 것인가?'라고 했다.
나 이외에 누가 내 그림자를 바꿔주겠는가?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가 갈증이 나서 밤길에 한 바가지 들이켠 물이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고 한다. 그 시원함이 이튿날 구역질로 변했다는 이야기에서 사실은 변한 것이 없는데 행동은 크게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효는 여기에서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일체유심조라는 의미는 세상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제의 의미 없던 길과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조차 정주고 따사롭게 맞이하면 내 안의 보석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고 사라지니 정작 모를 것은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근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많건 적건 간에 우리는 늘 근심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인데도 낙천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역경(易經)에 낙천지명(樂天知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하늘(天)을 즐기고 명(命)을 알면 근심이 없다고 한다.
불교신자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를 인과응보의 결과로서 전생에 선업을 쌓았느냐 악업을 쌓았느냐에 따라서 오늘의 인생이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선업을 쌓느냐 악업을 쌓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된다고 한다.
행복은 우리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아서 기쁠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날아가면 허전하고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一切唯心造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겠다. 그러면 덜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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