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랐다.
안개 낀 사이로 단풍 색깔은 더 짙어졌고 어느덧 단풍 물결이 동네 아래로 내려왔다.
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앞산을 바라본다.
앉아서 보면 느낄 수 없는데 모로 누워 바라보면 산의 속살이 보인다.
산의 등줄기가 움직이는 것도 보인다. 저마다 키를 달리해 붕긋붕긋 솟은 산. 골짜기를 경계로 서로의 얼굴도 마주한다.
지나간 여름 어느 날 여기 왔을 때, 저 산의 나무들이 푸르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렇다고 죽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무도 잠자는 것이지 죽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단풍이 일주일쯤 이르고 다른 해보다 더 곱다고 한다.
저 고운 단풍은 저 혼자서 자태를 만들지 못한다.
땅이 입을 다물고 만물이 서서히 휴식을 취할 자세를 가지려는 때, 쌀쌀해지는 기온과 습기와 자외선 같은 자연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영향이 복잡하게 얽혀서 생물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리라.
아름다운 단풍, 열매 하나를 단지 자연으로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저 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빨간 단풍잎, 노란 은행잎들 속에 스며든 기후와 습기와 자연의 섭리를 함께 느낀다.
저녁에 먹는 밥 한 그릇에서 농부의 땀, 생선 한 마리에서 어부의 시선, 철 따라 바꿔 입은 옷에서 근로자의 근면함을 느낀다.
사회는 다양해야 하고 그럴수록 좋다. 하지만 다양성은 변치 않는 어떤 원칙 속에 존재한다.
아마도 그 원칙이라면 자기 안에 있는 타인, 타인 속에 있는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균형의 감각으로 저울질 해보는 습관, 이런 것을 키우는 사회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주목했던 노벨 평화상이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으로 발표되었다.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여 대복 지원이 너무 성급하다느니 내치에 소홀하고 무슨 북한 지원에만 정치력을 쏟는다고 야단들이다.
제2의 IMF가 다시 온다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 상을 받으면 되느니 안 되느니 한 쪽에서 말이 많을 때, 서운한 마음이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지! 씁쓸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없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다른 점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바른 사회생활의 태도이라고 생각된다.
저 가을은 스스로 여물지 않는다는 이치를 배워야겠다.
타인에게서 나를, 나에게서 타인을 보는, 한 발 물러나서 보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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