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탈무드의 친구 이야기

명명가 2012. 9. 3. 00:19

  탈무드의 친구 이야기
 
  논술에 탈무드를 배경으로 하는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전달하는 바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대인의 정신적인 유산으로 유대교에서는 '토라(Torah)'라고 한다.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있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지혜집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에서는 탈무드를 불태웠을까? 그것은 반유대주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중세 이후로 기독교는 유대인들을 예수 살해의 장본인으로 여겨 핍박을 했다. 덩달아 탈무드도 금서 조치를 받았고 탈무드를 불태웠다고 한다.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서 공식화되었는데,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후로 기독교와 유대인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5세기에는 그 관계가 깨어졌고 로마제국과 교회는 유대인을 보통 계급에서 추방함으로 유대인의 수난과 핍박이 1500년 동안 이어지게 되었다.
  11-13세기에 걸쳐 십자군에 의하여 무슬림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함께 참사를 당했다. 15, 16세기의 스페인에서 행해진 종교재판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죽였다. 이는 후에 히틀러에 의하여 유대인 대학살의 기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1881-1921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대학살(포그롬)은 교회의 승인하에 펼쳐졌고, 히트러는 '홀로코스트'로 1939년 기준 9백만의 유대인을 3백만으로 감소시켰습니다. 이런 와중에 탈무드가 안전한 것이 이상하다고 보아진다.
 
  탈무드는 유대교 규율과 유대교 도덕 등에 대한 랍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랍비 : 유대인 혹은 유태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책) 탈무드에 실려있는 내용에는 유태인의 격언도 들어있다. 정리하자면, 탈무드랑 유태격언이랑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란 행복하지 않으면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상태의 것인가? 도대체 행복의 크기는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사람마다의 대답은 각기 다른 것이고 또한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란 평생을 이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얻은 것에 따라 행복의 크기를 잰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잃는 것에 따라 행복을 측정하기도 하고 건강과 질병에서 보듯이 평소 건강할 때에는 건강에 대한 행복감을 모른다.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릴 때 비로소 건강을 되찾고자 몸부림친다. 병마는 몸으로 하여금 고통과 외로움을 안겨 준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는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한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행복에 취해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이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고통에 의해 그 소중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고 나서야 '나는 행복했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탈무드의 친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친구는 분명 필요하다. 친구란 없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친구를 유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완전한 친구를 찾는 자는 단 한 사람의 친구도 얻지 못할 것이다. 친구에게서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용서 구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늙은 아내와 늙은 개란다. 친구는 꿀과 같은 것이므로 전부 먹어버리려 해서는 안 되고 친구와 허물이 없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대하여서는 안 된단다.
  오랜 친구 한 명을 새로운 친구 열 명보다 더욱 귀중하게 여기란다. 친구가 없는 자는 한쪽 팔밖에 없는 인간과 같다. 친구에게는 세 종류가 있다. 빵과 같은 친구는 항상 필요하다. 그리고 약과 같은 친구는 가끔 필요하다. 그러나 병(病)과 같은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는 피해야 할 것이다. 친구를 구덩이에서 구할 때에는 자신도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탈무드의 세 친구 이야기를 보면 우리의 사는
방법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어떤 남자에게 세 사람의 친구 즉 '물질'이라는 친구와 '인간'이라는 친구, 그리고 '선행'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주인공이 죽게 되었다. 주인공은 죽어 가는 마당에 평소 가장 친했던 물질에게 달려갔다. 여보게, 물질! 내가 이렇게 죽게 되었네. 날 좀 도와주게. 염라대왕에게 몇 마디 해주게나. 그런데 물질은 '나는 자네를 모르네. 자넬 본 적도 없는걸' 하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주인공은 다음으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 '인간'에게로 갔다. 주인공의 사정을 들은 인간은 '그거 참 안되었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덤까지 함께 가주는 것일세. 그 이상은 갈 수가 없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선행에게 가보았다. 선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자네가 나를 평소에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 자네가 나에게 한 것만큼만 염라대왕에게 가서 변호해 주겠네.'
 
  이 이야기는 세속적인 가치만을 쫓아 길바닥 같은 인생을 산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재미있게 표현해 주고 있다.
   첫번째 친구는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서로 친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두번째 친구도 역시 사랑은 하고 있었으나 첫번째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세번째 친구도 친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두 친구만큼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왜 세 사람은 각각 그렇게 말했을까? 첫번째 친구는 '재산'이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죽을 때는 남겨두고 갈 수밖에 없다. 두번째 친구는 '인간'이다. 화장터까지는 따라가 주지만, 거기서부터는 그냥 돌아가 버린다. 세번째 친구는 '선행'이다. 그것은 보통 때는 눈에 띄지 않으나, 죽은 후에도 늘 함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의 하나이며, 세상의 크고 작은 분쟁에서 분란의 원인을 제공하는 민족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또한 탈무드가 그들에게 지난날에 경전처럼 떠받드는 책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유대인 성공의 이면에 이 책이 늘 자리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탈무드의 의미는 결코 쉽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어떤 학자가 장수하는 비결을 연구한 결과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단명한 사람과 장수한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미국인 7000명을 대상으로 한 9년 간의 추적조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는 흡연량, 음주량부터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 상황, 인간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세세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의외의 진실을 찾아 낸 것이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담배나 술은 수명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이색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 상황 등 그 어느 것도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 조사 끝에 밝혀낸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친구의 수'였다고 한다.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란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사님과 주교님의 메시지   (0) 2012.09.03
양반과 회사원의 자만  (0) 2012.09.03
나 홀로 나들이  (0) 2012.09.03
어느 시인의 마음   (0) 2012.09.03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   (0) 201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