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양반과 회사원의 자만

명명가 2012. 9. 3. 00:19

양반과 회사원의 자만
 
  판중추부사 조경이 어느 양반 집에 놀러 갔다. 그 집주인은 늦게 얻은 어린 손자를 너무 귀여워한 나머지 아주 버릇없게 키우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한테나 기어오르기도 하고 곁에 있는 노인에게 함부로 상스러운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주인은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린애가 어른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욕하는 것은 기상이 범상하지 않은 증거인지라 장차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킬 제목이 될 것이요.' 이 말을 들은 조경이 말했다.
  "어린 아이의 심기는 아직 바르지 못하므로 종아리를 때리며 어른을 공경하게 가르쳐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종종 있소. 하물며 지금 남을 모욕하는 행동을 즐거워한다면 이것이 이 아이의 버릇을 나쁘게 하는 것이오. 집안에 공경할 사람이 없다고 믿어 나중에 악을 범하는 지경에 이르면 어떻게 하겠소?"
  이 말을 들은 양반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술에 취한 회사원이 영업용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횡설수설하였다.
  "당신 참 불쌍하오. 하루 종일 운전만 하니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시오. 그 수입으로는 살기도 어렵지요." 그러자 운전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손님 직업은 무엇인가요?"
  "나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의 회사원이요."
  운전 기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불쌍하시오."
  "당신은 사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며 언제 그만둘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아니요. 정작 자신의 마음과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지요.
  당신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회사원은 먹은 술이 깨어 도중에 하차하고 말았다.
  이 두 이야기에서 옛날사람과 현대인의 자만심은 너무도 흡사하다. 자신의 교만함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얄팍한 시야로 보이는 세상을 제일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괴에테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 꽃이 그 마을에 사는 가장 아름다운 처녀의 손에 꺾이어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꽃은 '내가 한 송이의 앉은뱅이 꽃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가 악한 사내의 발에 무참하게 짓밟히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처녀의 손에 꺾이어 죽게 되었으니 꽃으로 태어난 보람을 이제 느꼈노라.'라고 말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어쩌면 그렇게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는가? 이처럼 우리도 살아가면서 힘들었던 때가 왠지 좋은 때 같고 몇 달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푹 쉬고 나면 그때가 제일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시간과 처지에 따라서 가치판단이 흐려지고 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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