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和而不同

명명가 2012. 9. 3. 00:22

和而不同

 
   2009년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정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논어 자로(子路)편의 글귀에서 따왔다. 화이부동이라는 뜻은 和 화할 화, 而 말 이을 이, 不 아닐 불, 同 한 가지 동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조화를 이루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의 주관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를 화이부동하는 사람, 소인을 동이불화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나라 경공이 사냥에서 돌아올 때 간신 양구거가 수레를 몰고 나아가 경공을 맞이하였다. 이를 보고 경공이 양구거를 칭찬하자, 재상인 안영은 이를 국끓이기에 비유하여 양구거의 행실을 비판하였다. 요리사가 고깃국을 끓일 때 싱거우면 소금을 넣고, 짜면 물을 넣어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임금이 옳다고 하면 옳다고 말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면 그르다고 말하기 때문에 짠국에 소금을 더 넣고, 싱거운 국에 물을 더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영은 양구거를 '동이불화'하는 소인으로 보았던 것이다.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되 의리를 굽혀서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새해에는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의미이다.
   화이부동을 뽑은 교수들은 ‘이념과 계층 간 갈등 극복’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송순재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서로 경청하고 협력할 때 가능하다며 첨예화된 계층 분화와 경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데 화이부동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배윤기 부산대 교수도 차이를 서로 존중하는 인식과 태도가 정착돼야 지금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윤재민 고려대 교수는 소인배들의 사귐은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이 아닌 상태에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한데 반해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다른 환경, 생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갈등 대신에 화합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이다.
   가정이든 나라든 구성원 간에 갈등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모습은 성숙한 가정, 선진국의 조건이 된다.
   로마의 시인 터틀리언은 ‘햇빛은 하수구까지 고르게 비추어 주어도 햇빛 자신은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훌륭한 사람은 진흙 속에 있는 진주와 같아서 주위 환경에 오염되지 않으며 또 바로 주위 환경을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화합하는 것이 결코 자신을 더럽히거나 자신의 의지를 굽히는 것이 아니다. 화합에 꿈을 더하면 우리는 어려운 난국을 이겨 나갈 수 있다.
   암울의 시대에 문지기를 자청했던 김구 선생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꾸었다. 젊고 나약하기만 했던 간디도 인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두 귀가 먼 절망의 늪에서도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을 꿈꾸었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꿈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노력을 담은 그릇이다. 노력은 자신의 원대한 꿈을 현실에서 열매 맺게 하는 자양분이다. 2009년에는 화이부동하여 우리 모두 하나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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