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群衆 속의 고독

명명가 2012. 9. 3. 00:24

群衆 속의 고독
 


   오늘 TV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다. 어떤 할머니가 개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잠을 잘 때도 개와 함께 자고 일어날 때도 개가 깨우고 외출할 때도 개와 함께한다. 서로가 외로우니 개와 죽음도 같이 하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한다. TV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눈물이 나도록 외로워 보였다.
   살다보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날이 있다.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많은데 만나서 말붙여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걷기운동을 하기 위해 정해진 코스로 공원을 걷는다. 누군가 앞지르기를 한다. 어디서 본 뒷모습이다. 인사는 없어도 공원 운동장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청바지에 파란 모자를 쓰고 폰을 귀에 꼽고 사계절 빠짐없이 공원에 나와 트랙을 돌고 돌아간다.
   몇 년째 만났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지나칠 뿐이다. 군중 속에 살지만 우리는 항상 고독하다. 군중속의 고독은 무엇인가? 소박하고 솔직한 내 모습은 군중 속의 볼품없는 꽃이 되었나? 나의 향은 군중 속으로 살아졌나? 먼지 묻은 내 향은 비가 와서 씻어주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군중 속으로 나타나려나? 어리석은 모습으로 그냥 그렇게 군중 속에 어울렸는데…….
   군중 속에서 내 이름만 부르며 살아온 날들이 환한 햇살 아래 부끄럽기만 하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고독의 본질은 인간이 혼자서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도 인간은 혼자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혼자서 살아야 한다고 고독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형제, 친구라도 언제든 그 사이에 고독이 존재한다. 결국 이쪽으로 가든 저쪽으로 가든 혼자다. 어울림 속에도 인간은 고독을 느끼게 마련이다. 군중 속의 고독은 가장 큰 고독이다. 고독 중에서 정신적인 고독이 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고독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되었을 때 느끼는 고독과 대화가 상실될 때 느끼는 고독 등이 정신적인 고독이다.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만큼 그 고독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다양하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저런 모임이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모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많은 고독을 느낀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며 그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독이 우리에게 고통도 주지만 때로는 자아를 성숙케 하기도 하는 유익한 면도 있다.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된 후,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을 때 외로웠으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많은 사색과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움이 커졌다고 고백하였다. 그의 업적은 고독을 자아 성숙으로 승화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는 고독을 각오해야 하는 시대이다. 고독을 두려워 말고 또 하나의 친구로 삼아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깊이 관조할 때 내 자아가 더욱 성숙해지는 좋은 점이 있고, 오히려 자신의 내적 세계에 풍요로움을 준다.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이며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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