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묵은 제자들이여

명명가 2012. 9. 3. 00:25

묵은 제자들이여

 
   2009년 3월 6일 (금) 묵은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유성의 조선뚝배기 불고기집에서 많은 제자들과 동료들을 만났다. 동료들끼리도 32년 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 제자들이지 그들은 이미 장년이 된 후였다. 세상을 살다가 그 옛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모였다. 그들의 나이가 40대 중반이란다. 같이 늙어간다는 말이 어울렸다.
   음식점에 들어서자 그들은 그 옛날 자기들이 소속되었던 반과 자신의 이름을 목에 걸고 맞이하며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얼굴은 감추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었다.
   한 제자가 32년 전의 빛바랜 학급사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추억을 말하고 그들의 근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서울, 울산, 부평, 충주, 서천 등 각지역별 모임에서 찾아왔다고 하였다.   
  멀리는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도 참석하였다.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동대문에서 도매상을 운영한다는 우리 반 제자는 인품이 후덕한 사업가로 변하여 그 옛날의 학교 시절에 예견했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한 여자 제자는 추억담을 말한다. 내가 남자반 담임을 하고 있을 때 여자반에서 자기가 심부름을 자주 왔는데 남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하라고 하여 가끔 난처하게 만들었단다.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자네가 그 때 너무 예뻤던 모양이네 하고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한 남자 제자가 오늘은 호랑이 선생님들이 세 분이나 오시니까 답배를 밖에 나가 피우라고 당부하였단다. 그래서 누가 호랑이 선생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나를 포함하여 남자반 담임을 하였던 세 사람이란다. 하긴 내가 그 당시에는 학생들을 엄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자 한 여자 제자는 지금 뵈니 이렇게 인자하신데 그때는 무서운 선생님이었단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제자는 영원한 제자이고 스승은 영원한 스승인가 보다. 어리광을 부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남, 여 제자 한 쌍이 다가와 술잔을 권하며 자기들은 동창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동창 부부는 잘 사는 법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우리들의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제자들의 세월만 한발 더 부지런히 달려간 것 같다. 뒤도 안돌아 보고 선생님 제발 늙지 마시고 천천히 가란다. 내가 30대 초반에 가르쳤던 학생들인데 이제 그들이 40대 중반의 장년이 되어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생활 전선에서 이리저리 흩어졌다가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여기에 모이고 보니 제자치고는 참으로 어른스럽다.
  세상의 변화에는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삶의 승차권 하나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여행을 하였다. 삶의 여행에서 함께 동승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웠는데 중간역에서 환승하여 각자 그들의 기차로 오른 후에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용케 아직까지 그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그 환승역에 다시 모인 것이다. 중도에 하차하거나 환승역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들이 각지에서 든든한 역군이 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힘찬 박수를 보내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시간이 앞으로만 갈 뿐 뒤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라는 기차여행도 뒤돌아 오는 일이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 옛날로 뒤돌아 갈 수 있었다.
  동료들끼리도 전세살이 하던 그날들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행복을 이야기하였다.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달려온 길 보다 종착역이 가깝다는 말들을 하며,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여행의 즐거움을 우리 가끔 만나서 회포도 풀고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세상의 힘든 터널을 함께하잔다. 세월이 우리를 떠 밀어 귓가에 흰머리도 만들고 앞머리를 허전하게 만들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다. 그들은 분홍색 보자기에 선물을 포장하여 전달하면서 이별을 고하였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만들어 살자  (0) 2012.09.03
빈둥지증후군   (0) 2012.09.03
인간은 만남의 존재이다   (0) 2012.09.03
群衆 속의 고독  (0) 2012.09.03
실수  (0) 201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