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상을 만들어 살자

명명가 2012. 9. 3. 00:26

세상을 만들어 살자

 
   어제 모처럼 사촌 처남 집에 들러 즐거운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 처남들과 만나 술도 한잔하고 찜질방에 들러 잠도 함께 자며 시간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곳에 가서 그 처남이 자신의 세상 집을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그림을 보고 왔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살아간다. 내가 옷가게로 옷 사러 갈 때에 보이는 것은 모두 화려한 옷뿐이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옷차림에만 눈이 간다. 다른 모습은 별로 관심이 없다. 세상은 내 마음이 끌리는 것에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은 날에는 일상이 더 즐겁고 넓게 보인다. 슬픈 것들은 아예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고 한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만 보인다.

그러나 산속에 사는 사람이 산이 보이지 않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 그곳 사람들에게 산이 보이고, 바다가 보일 때, 그때서야 산의 신비와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며 산다. 느끼지 못하고 가슴에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 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구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 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모파상의 이야기에 빌려온 가짜 진주목걸이를 잃어버렸는데 그걸 진짜 진주 목걸이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했다는 내용이 있다. 짝퉁도 그게 가짜인줄 모를 때까지는 진품인 것이다. 세상은 보는 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 오르기 전에 정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위치에서 보이는 경치를 즐기며 산에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그 정상이 가치 있는 등산의 묘미를 말할 수 있다. 정상만 생각하고 오른다면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린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인생을 싣고 가는 세월은 너무도 빠르다. 어차피 인생도 정상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세상은 나만의 정상이 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세상사가 이론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삶의 기준일 뿐 삶의 방법은 아니다. 내 자신에 맞는 옷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어 살아보자.

 
               (200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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