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지증후군
자식들이 집을 나가고 두 내외만 사는 집에서 느끼는 심리적 상황이 빈둥지증후군이다. 우리 딸은 직장을 찾아, 아들은 공부하느라 서울로 떠나 두 내외만 남았다. 처음에는 허전하여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애들이 전화도 안 하면 더욱 조용하였다. 아침, 저녁 식탁도 단순해지고 대화도 적었다. 때로는 모두 다 날아간 빈 둥지 같은 삶에 그리울 것도 없이 살아간다면 삶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하였다. 자식들이 자랄 때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있어줄 것만 같았는데, 떠나고 나니 기다림 속에 그리움만 남아 있다. 그들이 떠난 작은 방에는 식어가는 체온만이 미지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숱한 애환이 허전함으로 다가와 제1차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 가정에 경사가 났다. 아들 내외가 서울에서 살림을 차렸는데 며느리가 졸업을 하고 대전에 직장을 잡았다. 그리고 손자를 낳았다. 며느리가 직장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과 사돈댁에서 번갈아 가며 손자를 돌봐주기로 하였다. 우리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새로운 육아문제에 적응하느라고 힘이 들었다. 밤에 우유를 타서 젖병을 들고 다니던 일, 우윳병을 깨끗이 닦는 일, 아기가 깰까봐 항상 조용히 하는 일, 목욕시키는 일,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아내가 아기를 혼자 업고 혼자 내리는 일,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하여 소아과에 다니는 일 등이 분주하면서도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었다. 손자가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려우면서도 웃음을 주는 손자가 역시 우리의 보배였다. 손자 자랑하려면 돈 내놓고 하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손자 재롱을 자랑하고 싶다. 그러나 들어줄 사람이 없다. 손자가 생긴 후, 온 집안 식구들이 한데 모여 손자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사돈 내외도 우리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손자를 외가로 얼마동안 보내고 나면 집안은 금세 텅 빈 것 같다. 보내고 들어오는 발걸음부터 무거워진다. 그야말로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찾던 어린 새들이 날아간 빈 둥지가 된다. 손자만 가는 것이 아니고 주변 식구들의 시선도 함께 간다. 아기의 장난감만 나뒹구는 모습을 보다가 동영상만 들여다본다.
아기가 잠자던 방의 침낭을 보며 귀여운 모습을 그린다. 목욕탕의 목욕하는 모습을 그린다. 청소할 때 청소기를 따라다니던 모습을 그린다. 그래도 보고 싶은 것이 제2차 빈둥지증후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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